항목 ID | GC042195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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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閔建鎬 筆寫本 一括 |
이칭/별칭 |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87호 |
분야 | 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부산광역시 남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동철 |
[정의]
부산광역시 남구 부산광역시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민건호가 쓴 일기·시문 등 필사본.
[개설]
민건호가 1881년 조사시찰단으로 일본에 갔을 때 쓴 일기인 『동행일록』, 부산항 감리서에서 근무할 때와 퇴임 이후에 쓴 일기인 『해은일록』, 자신의 글 중에서 시문을 뽑아 집성한 『해은만록』, 1903년 61세 환갑 생일 잔치 때 참석한 사람들이 지은 축하시를 모은 『해은수연운』 등 네 종류의 필사본을 일괄 가리키는 것이다.
[저자]
저자는 민건호(閔建鎬)다. 본관은 여흥으로 증조부는 민백빈(閔百彬), 조부는 민경혁(閔敬爀)이다. 아버지는 민치호(閔致琥), 어머니는 삭녕 최씨 최원택]의 딸이다. 2남 1녀 중 차남으로 1843년(헌종 9) 8월 27일 해남에서 태어났다. 1920년 1월 19일 별세하였다. 자는 성로(聖老), 호는 해은이다. 부인은 이병규의 딸 전주 이씨이며, 3남 3녀를 두었다. 아들은 민영진[초명 민영국], 민영희, 민영훈이다. 사위는 윤주원, 고재설, 이항림이다. 주요 경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883년(고종 20) 부산항감리서 서기관, 1885년(고종 22) 10월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주사, 1886년(고종 23) 동남포경사, 1888년(고종 25) 9월 동래감리서 서리대판(代辦), 1890년(고종 27) 부산항 장무관, 중화부사, 내금위장, 부산항 방판에 임명되었다. 1891년(고종 28) 4월 다대(포)진첨사에 임명되어, 7월 12일 첨사로 부임했다가, 1893년 4월 임기가 만료되어 해임되었다. 1896년(건양 1) 나주부 사판(査辦) 제일(第一)위원, 1898년 1월에 중추원 1등 의관(議官)에 임명되었다. 1905년(광무 9) 5월 가선대부 품계를 받았다.
[형태 / 서지]
『동행일록(東行日錄)』 1책, 『해은일록(海隱日錄)』 29책, 『해은만록(海隱謾錄)』 1책, 『해은수연운(海隱壽宴韻)』 1책, 합계 32책이다. 규격은 책마다 다르지만, 거의 비슷하다. 대체로 19∼23×19∼22㎝ 정도이다. 재질은 지류(紙類)이다. 책은 필사본으로 유일본이다. 각각의 종이에 구멍에 내어 하나의 책으로 묶었다. 묶은 끈은 종이를 꼬아 만들었다. 책은 완본도 있고, 결본도 있다. 이를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동행일록』1책 완본[1881.2.28.∼1881.8.30.],『해은일록』29책 제1책 결본[1883.8∼10, 1883.11.23.∼1914.12.30.], 『해은만록』1책완본[1884∼1919.6.], 『해은수연운』1책4책 중 제1∼3책 결본[1903.8.27.]
이 책들은 1993년 9월 11일 부산광역시립박물관이 서울에 거주하는 고창석에게서 구입하여, 현재 소장하고 있다. 네 종류의 책은 모두 부산근대역사관에서 『해은일록』(1∼5)으로 영인본이 출간되었다. 부산근대역사관에서 국역본인 『국역 동행일록』(2008)과 『국역 해은일록(Ⅰ∼Ⅵ)』(2008∼2013)이 출간되었다. 『국역 해은일록(Ⅵ)』(2013)에는 『해은만록』과 『해은수연운』의 국역이 포함되어 있다.
[구성 / 내용]
① 1881년 박정양(朴定陽) 등 12명의 관료를 중심으로 구성된 조사시찰단(朝士視察團)이 일본에 파견되었다. 12명에게는 내무성 등 중앙부서, 세관 등 관청, 육군이나 기선 등을 파악·보고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박정양은 내무성, 민종묵·조병직·이헌영은 세관을 담당하였다. 민건호는 이헌영의 수행원으로 참여하였다. 이때 쓴 일기가 『동행일록』이다. 『동행일록』은 1881년 2월 28일∼8월 30일의 기록이다. 해관, 병원, 철도, 학교 등 일본 근대 문물에 대한 많은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② 1876년 부산이 처음 개항된 이후 1880년에 원산, 1883년에 인천이 개항되었다. 개항장에는 감리서(監理署)가 설치되었다. 1883년 8월 감리서 총책임자인 감리의 파견이 결정되었다. 초대 부산항 감리서 감리[감리 부산항 통상사무]는 이헌영이다. 이때 민건호는 감리를 보좌하는 감리서 서기가 되었다. 1881년 조사시찰단에서 맺은 이헌영과의 관계가 1883년 부산항 감리서로 이어졌다. 민건호는 1883년 12월 부산에서 감리서 서기로 관료 생활을 시작하였다. 중간에 해남과 한성에 있은 때도 있었지만, 감리서 방판, 다대진첨사 등을 역임하면서 1894년까지 10여 년 동안 부산에 있었다. 이때 쓴 일기가 『해은일록』이다. 업무일지와 생활일기의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다.
『해은일록』의 오른쪽 아래에는 책의 일련 번호[二-三十]가 적혀 있다. ‘일(一)’번이 결번이다. 원래는 전체 30책인데, 제1책은 결본인 것으로 보인다. 일기는 1883년 8월 「해관감리 설치사목(海關監理設置事目)」부터 시작한다. 일기는 1883년 9월 25일부터지만, 본격적인 일기는 1883년 11월 23일부터 시작해서 1914년 12월 30일까지다. 다만 1909년, 1910년분 일기는 없다.
③ 『해은만록(海隱謾錄)』은 민건호가 자신의 글 중에서 시문을 가려 뽑아 집성한 것이다. 1884년 부산항 감리서로 재직할 때, 1894년 해임된 후 고향집에 돌아왔을 때, 1909년 7월 23일 아들이 요절했을 때 등, 그의 삶 속에서 적은 시들이다. 현재 남아 있는 책의 표지에는 ‘四(사)’라는 번호가 써져 있다. 내용은 1884년부터 1919년 6월까지 지은 시로 구성되어 있다. 민건호가 1920년 1월 19일 사망했으므로, 제4책이 마지막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제1-3책은 결본이라고 생각한다.
④ 『해은수연운(海隱壽宴韻)』은 1903년 8월 27일, 61세 환갑 생일 잔치 때 모인 사람들이 지은 축하시를 모아 놓은 책이다. 임한승, 이복흠 등의 시가 들어 있다. 민건호 자신이 베껴 적었다고 생각한다.
[의의와 평가]
1881년부터 1914년까지의 30년 정도 동안의 민건호 개인의 삶을 알 수 있는 1급 사료다. 『동행일록』은 일본의 나가사키[長崎], 오사카[大阪], 교토[京都], 고베[神戶], 도쿄[東京] 등 주요 도시에서 새롭게 경험한 근대 문물에 대해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민건호의 눈을 통해 근대 일본의 사회상을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해은일록』은 감리서, 해관, 동래부, 일본 영사관과 조계지, 중국 조계지 등과 개항기·개항장 부산을 중심으로 한 외교적인 실태를 알 수 있는 1급 사료다. 외교적, 제도적인 내용도 중요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개항장 부산을 살았던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 서양인들의 구체적인 삶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개항장 부산을 통해서 들어온 새로운 외국[이국]의 문물·문화가 교류되고, 수용되는 양상을 알 수 있는 1급 사료다. 부산 근대사, 한국 근대사에서 이 자료들이 가지는 사료적 가치는 매우 크다. 이러한 사료적 가치 때문에, 2018년 1월 31일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8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