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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산동 방근 마을 밀양 박씨 세거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9180
한자 菉山洞芳根-密陽朴氏世居地
영어의미역 Noksan-dong Milyang Bak Ancestral Village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방근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상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세거지
가구수 약 10가구
세거지 녹산동 방근 마을 밀양 박씨 세거지 -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방근 마을

[정의]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에 있는 밀양 박씨 세거지.

[개설]

신라 경명왕의 첫째 아들 박언침(朴彦沈)이 밀성[밀양(密陽)] 대군에 봉해졌고,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본관을 밀양으로 하였다. 밀양 박씨(密陽朴氏)에서 10여 개의 본관으로 나누어지고, 밀양 박씨 내에서도 여러 개로 분파되었다. 강서구 녹산동 방근 마을에 입향한 파는 규정공파(糾正公派)[파조 박현(朴鉉)]의 분파 승지공파(承旨公派)[파조 박순원(朴舜元), 1543~1615]에 속한다.

이곳의 밀양 박씨의 조상은 다음과 같다. 고려 시대 사헌부(司憲府) 규정(糾正)을 지낸 시조 왕 45세손 박현의 8세손 박미(朴楣)[1433~1493]가 좌부승지(左副承旨)·예조 참의(禮曹參議)·대사간(大司諫)을 차례로 역임하였고, 박미의 아들 박광영(朴光榮)[1463~1537]이 좌승지(左承旨)·부총관(副總管)·형조 참판(刑曹參判)을 지냈다. 박광영의 손자인 박현의 11세손 박순원이 평양 서윤(平壤庶尹)·영천 군수(永川郡守)를 지냈으며, 무훈(武勳)으로 정난공신(靖亂功臣)에 봉해지고 통정대부(通政大夫) 좌승지(左承旨)에 증직(增職)되었다.

[명칭 유래]

방근(芳根) 마을은 본래 방근(防斤)이라는 한자를 썼는데, 이는 인근에 있는 조선 성종(成宗) 때 축성한 금단곶 보성(金丹串堡城)과 관련이 있다. 즉 금단곶 보 군사를 지원하기 위한 무기를 만들던 지역에서 방근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일제 강점기에 지금의 한자 표기로 바뀌었다.

[형성 및 변천]

시조 왕 61세 규정공의 17세손인 박명혁(朴明赫)이 1730년경에 강서구 녹산동 방근 마을에 입향하였고, 그의 후손들이 지금까지 살고 있다. 이후 송정 마을에 일부 이거하였다.

[자연 환경]

방근 마을은 송림산을 사이에 두고 송정 마을과 이어진 마을로, 본래 지형은 북쪽에는 봉화산(烽火山)에서 이어진 줄기가 동서로 길게 뻗어 있고, 남쪽으로는 남해 바다와 접한 해안가 마을이었다. 마을 서쪽으로는 해발 고도 80m가량의 송림산[독뫼산]이 있고, 동쪽으로는 북쪽 봉화산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린 산줄기가 자리하며, 마을과 북쪽 봉화산 산지 사이에는 평지가 펼쳐져 있었다. 1999년 남쪽 해안가가 매립되어 녹산 국가 산업 단지가 조성되었다.

[현황]

집안이 한창 번성할 때는 방근 마을에 30여 가구, 송정 마을 등 이웃 마을에 10여 가구가 사는 집성촌을 이루었지만 녹산 국가 산업 단지가 들어서면서 차츰 떠나기 시작하여 지금은 다 흩어졌다. 2013년 현재 방근 마을에 규정공의 25세 박영식(朴英植)[83세] 외 10여 가구가 살며, 송정 마을에 4~5가구가 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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