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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서동 은진 송씨 세거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7584
한자 久瑞洞恩津宋氏世居地
영어의미역 Guseo-dong Eunjin Song Clan Hometow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부산광역시 금정구 구서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영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세거지
가구수 4가구
세거지 구서동 은진 송씨 세거지 - 부산광역시 금정구 구서동

[정의]

부산광역시 금정구 구서동에 있는 은진 송씨 세거지.

[명칭 유래]

구서동은 조선 시대에 구세리(仇世里)로 불렸다. 부산 동래 고지도를 비롯한 여러 고지도에 지명이 수록되어 있다. 구세(仇世)는 ‘구세동거(仇世同居)’에서 따온 말로 중국 당나라의 장공예(張公藝) 9대가 한 집안에서 살았다는 고사에서 집안이 화목한 것을 이르는데, 이곳이 바로 그러한 지역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 설명한다. 또한 굿을 하는 동네라는 뜻에서 굿판·굿터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다.

[형성 및 변천]

구서동에 세거하는 은진 송씨(恩津宋氏)는 사마공파(司馬公派)[송세감(宋世勘)] 후예로, 충렬사 24 별전 공신인 입향조 송창문(宋昌文)[1564∼1610]의 후손들이다. 송창문은 원래 충청도 회덕에서 거주하다가 임진왜란 이전에 구서동으로 이거해 온 것으로 보인다. 그의 후손들로 1766년(영조 42) 동래 부사로부터 『포충속후록(褒忠續後錄)』을 받은 5세손 송규상(宋奎祥)[1709∼?], 동래 향교(東萊鄕校) 도유사를 지낸 송희일(宋禧鎰)[1828∼?]이 있다. 이 가문에 현재 남아 있는 160여 장의 호적 단자에 의하면, 후손인 송규성(宋奎晟)은 서면 양정, 송규상(宋奎祥)은 남구 대연동, 송경인(宋景仁)은 기장군 산막, 송시균(宋時均)의 자손은 구서동에 거주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자연 환경]

구서동 서쪽에 금정산이 있으며, 이곳 산록에서 발원한 소하천들이 동쪽으로 흘러 온천천에 유입한다. 동의 중심에서 남북으로 흐르는 온천천은 이곳에서 구시거렁천이라고도 불린다.

[현황]

2013년 현재 구서동은진 송씨 4가구가 살고, 부산 시내에 20가구가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정구 선동에 있는 별전 공신 송창문의 묘소에서 매년 음력 10월 첫 일요일에 시제를 올린다. 한편, 송창문은진 송씨지만 금정구 회동동에 있는 여산 송씨(礪山宋氏) 재실인 세덕사(世德祠)에서도 향사한다. 은진 송씨 가문에서는 조상 전래의 고문서인 교지 2장, 『포충속후록』 1권, 호구 단자 160여 장, 천지(薦紙) 1장 등 다수의 문서를 300년 동안 간직해 오고 있다[송기권 소장].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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