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75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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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達山里恩津宋氏世居地 |
영어의미역 | Residential Place of Eunjin Song Clan in Dalsan-ri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달산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진봉 |
[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달산리에 있었던 은진 송씨 세거지.
[명칭 유래]
달산리는 마을 남쪽에 있는 달음산에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형성 및 변천]
은진 송씨(恩津宋氏) 시조는 송대원(宋大原)이다. 14세손 서호(西湖) 송시호(宋時豪) 대인 1637년(인조 15)경 지금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달산리로 이주하였다. 송시호는 1604년(선조 37) 충청남도 대덕군 산내면 사한리에서 태어났다. 사복시 판사(司僕寺判事)로 재직 중이던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조직하고 군량을 모으는 등 활동을 하다가 남한산성에서 인조가 항복하였다는 소식에 벼슬을 버리고 달산으로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그 후 소호정(泝湖亭)을 열어 강론을 하기도 하였다. 영조(英祖) 때의 기장 현감 권적(權擿)과 월천(月泉) 신오(辛澳) 등이 이곳을 찾아 주자학을 담론하고 후학을 가르쳤다. 후손 취선당(醉仙堂) 송관인(宋觀仁)[또는 송관수(宋觀洙)]은 문집 상하권을 남기기도 하였다.
[자연 환경]
마을 남쪽으로 달음산 줄기인 천마산과 함박산이 있고, 북쪽에는 좌광천이 흐른다. 북쪽 산지와 남쪽 하천 사이에 평지가 나타난다.
[현황]
2003년 정관 신도시 조성 무렵 달산리에는 은진 송씨 39가구가 거주하였지만 2013년 현재는 마을 대부분이 없어져 인근 구연 마을에 6가구를 비롯하여 인근 아파트 등지에 30여 가구가 살고 있다. 마을에 있던 은진 송씨 재실 역시 정관 신도시에 편입되면서 헐려 기장군 장안읍 좌천리로 이축한 후 서호재, 향모사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