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74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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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水營洞密陽朴氏世居地 |
영어의미역 | Residential place of Milyang Bak clan in Suyeong-dong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주영택 |
[정의]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에 있는 밀양 박씨 세거지.
[개설]
밀양 박씨(密陽朴氏) 시조 박언침(朴彦枕)은 박혁거세(朴赫居世)의 29세손인 경명왕(景明王)의 맏아들로 밀성 대군(密城大君)에 봉하여졌다. 후손들이 이에 그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밀양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 왔다. 8세손 박언부(朴彦孚)를 파조로 하는 문하시중공파를 비롯하여 도평의사공파[8세 박언상], 좌복야공파[8세 박언인], 밀직부사공파[8세 박양언], 판도공파[8세 박천익], 좌윤공파[8세 박을재], 진사공파[10세 박원], 행산공파(杏山公派)[14세 박세균] 등으로 분파되었다.
은산 부원군(銀山府院君) 박영균(朴永均)[14세]의 큰아들인 박송은(朴松隱)은 고려 후기 8은(八隱)의 한 사람으로 예부 서랑 중서령을 지냈는데, 신하로서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고 하여 조선 태조(太祖)가 좌의정 등을 내리며 다섯 번이나 불렀지만 끝내 나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1400년경 15세손 박중미가 밀양 박씨 밀직부원군파(密直府院君派)로 분파하였다. 이후 문하시중공파를 비롯하여 도평의사공파 등 12파로 분파되었다.
[명칭 유래]
수영동은 조선 시대 동해 쪽 해상 방어를 담당하였던 경상 좌도 수군절도사영이 있었던 곳이라 하여 수군절도사영의 ‘수(水)’와 ‘영(營)’ 자를 따서 ‘수영’이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밀직부원군파 박중미의 18세손 박견춘(朴見春)이 1800년경 경상남도 양산에서 수영동으로 입향하였다.
[자연 환경]
수영동은 서쪽으로 금련산이 자리하고, 동쪽은 수영강과 접한다.
[현황]
2013년 현재 수영동에는 밀양 박씨 50여 가구가 살고 있다. 밀양 박씨 밀직부원군파 수영 분회 회장은 박옥수(朴玉守)이다. 이들 문중은 조상 숭배와 동족 화목을 위하여 월 1회 모임을 하는데, 참석자는 20여 명이다. 중요 무형 문화재 제62호 「좌수영 어방놀이」 예능 보유자를 2대째 전승하고 있는 박남수(朴南守)의 아들 박등무(朴藤茂)[수영민속보존회 회장]가 있다. 박남수는 「좌수영 어방놀이」 노동 현장을 재현하는 1인자로 손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