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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동 함안 조씨 세거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7426
한자 水營洞咸安趙氏世居地
영어의미역 Residential place of Haman Jo clan in Suyeong-dong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주영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세거지
세거지 수영동 함안 조씨 세거지 -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

[정의]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에 있는 함안 조씨 세거지.

[개설]

함안 조씨(咸安趙氏) 시조 조정(趙鼎)은 중국 후당(後唐) 사람으로 신라 말에 아우 조부(趙釜)와 조당(趙鐺)을 데리고 우리나라에 왔다. 조정은 고려 개국 공신인 신숭겸(申崇謙), 배현경(裵玄慶), 복지겸(卜智謙), 김선평(金宣平), 권행(權幸) 등과 교유가 두터웠다고 한다. 왕건(王建)을 도와 합천에서 군대를 일으켰으며, 931년(태조 14) 고창성에서 후백제 견훤 군을 대파하고 동경주현(東京州縣)을 공략하여 장악하였으며, 후삼국 통일에 큰 공을 세워 개국 벽상 공신 대장군 원윤(開國壁上功臣大將軍元尹)을 지냈다. 이에 그 후손들이 시조로 삼고 함안을 본관으로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파명(派名)은 통판공, 충순공, 사인공, 고죽재공, 산원공, 동지공, 동은공 등 21원파로 나누어진다.

[명칭 유래]

수영동은 조선 시대 동해 쪽 해상 방어를 담당하던 경상 좌도 수군절도사영이 있었던 곳이라 하여 수군절도사영의 ‘수(水)’와 ‘영(營)’ 자를 따서 ‘수영’이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함안 조씨로는 수군 만호를 지낸 동은공파 후손 조익삼(趙益三)이 사천(沙川)[현재 사상]에서 1750년 경 수영으로 이거하여, 두 아들 조경인(趙景仁), 조경흥(趙景興)과 손자 조원석(趙元錫)이 어모장군을 지낸 무인 집안으로 1800년 후대까지 세거하였으나 현재는 알 수가 없다.

동지공파(同知公派) 조일룡(趙日龍)이 1800년경 경상남도 함안에서 수영으로 이거하였다. 이후 그 후손 15여 가구가 좌수영성 북문 외리 마을에 살면서 「수영 야류」[중요 무형 문화재 제43호]의 전승 및 보존을 위한 예능 보유자를 5명이나 배출한 수영 야류 가문이다. 함안 조씨 동지공파 수영 문중의 「수영 야류」 연희자는 말뚝이 역의 조두영(趙斗榮)[1892~1964]과 조재준(趙在俊)[1906~1974, 예능 보유자], 가면을 제작한 조덕주(趙德周)[1914~1983, 예능 보유자], 장구 악사인 조복준(趙福俊)[1920~1996, 예능 보유자], 영감 역의 조홍복(趙弘福)[1933~2023, 예능 보유자] 등이다.

[자연 환경]

수영동기장군 정관읍 일대에서 발원한 수영강수영만으로 흘러드는 하류의 서쪽에 위치하며, 수영성 북문 바깥쪽에 분지를 이루고 있다.

[현황]

2013년 현재 수영동에는 함안 조씨 10여 가구가 살면서 「수영 야류」에 참가하고 있다. 입향조 조일룡 도산소가 금련산 기슭에 있는데, 이곳에서 매년 음력 10월 첫째 일요일에 행해지는 묘사에 후손 15명 정도가 참석한다. 함안 조씨 동지공파 수영 문중은 며느리회를 조직하여 매월 1회씩 월례회를 갖고 문중 활성화를 위한 친목도모에 기반 역할을 하고 있다.

[참고문헌]
  • 『수영 민속 총집』(수영고적민속예술보존협회, 2009)
  • 인터뷰(함안 조씨 동지공파 수영 문중 조홍복, 2013.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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