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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7408
한자 菉山洞慶州崔氏世居地
영어의미역 Noksan-dong Gyeongju Choe Ancestral Village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중곡 마을|범방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상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세거지
세거지 녹산동 경주 최씨 세거지 -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중곡 마을
세거지 녹산동 경주 최씨 세거지 -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범방 마을

[정의]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에 있었던 경주 최씨 세거지.

[개설]

경주 최씨(慶州崔氏)는 신라 6부 촌장 중 돌산고허촌장인 소벌도리(蘇伐都利)의 후손으로 800여 년을 이어 오다가 신라 말 유학자인 문창후(文昌候)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을 중시조로 하여 고려 시대에 명문 거족으로 이름을 떨쳤다.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에 정착한 계통은 정랑공파로, 파조(派祖) 최호(崔灝)는 시조 최치원의 12세손이다. 최호는 고려 정종 때 학자로 정랑(正郞)을 지냈다.

[명칭 유래]

중곡(中谷) 마을은 천마산(天馬山)과 비마산(飛馬山)의 중간 골짜기에 있다고 하여 이름 붙여졌다. 범방(泛舫) 마을은 금병산(錦屛山) 아래 배가 가는 행주형(行舟形)의 명당이 있어서 범방이라고 하였다.

[형성 및 변천]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에 처음 자리 잡은 입향조 최묵(崔默)은 정랑공파 파조 최호의 10세손으로 선조 때 청도의 용사지변(龍蛇之變)을 평정한 정3품 당상관 절충장군(折衝將軍)으로 그로부터 후손들이 정착하여 420여 년간 강서구 녹산동 중곡 마을범방 마을에 세거하였다. 최묵의 아들인 가선대부(嘉善大夫) 최성안(崔聖安)[1607~1667]은 중곡 마을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혼인하여 아들 형제를 두었는데, 큰아들 최두해(崔斗海)가 범방 마을로 이거하고, 둘째 아들 최두호(崔斗湖)가 아버지의 대를 이어 그대로 중곡 마을에 정착하였다. 중곡 마을 입향 시기는 16세기 말로 보이며, 범방 마을은 1650년 이후로 보인다.

[자연 환경]

중곡 마을은 북으로는 천마산이 자리하고, 범방 마을은 북으로 금병산이 있고 남쪽으로 낙동강이 흐른다.

[현황]

녹산동 경주 최씨 세거지(菉山洞慶州崔氏世居地)는 2000년 이전까지만 세거지를 이루었다. 2000년 중곡 마을 15가구에 51명, 범방 마을 22가구에 76명 등 총 37가구에 127명이 거주하였다. 그러나 중곡 마을은 2011년 부산 신항만 배후 물류 단지 공사로, 범방 마을은 2000년 초 부산 경남 경마 공원 공사로 마을이 사라졌다. 현재는 중곡 마을이 있던 곳에 입향조 신도비가 있고, 부산 경남 경마 공원 뒤에 경주 최씨 입향조 이하 집단 신위단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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