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73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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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中洞梧山-密陽朴氏世居地 |
영어의미역 | Residential Place of Milyang Bak Clan in Jung-dong Osan Village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동 오산 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주영택 |
[정의]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동에 있는 밀양 박씨 세거지.
[개설]
밀양 박씨(密陽朴氏) 시조 박언침(朴彦枕)은 박혁거세(朴赫居世)의 29세손인 경명왕(景明王)의 맏아들로 밀성 대군(密城大君)에 봉하여졌다. 후손들이 이에 그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밀양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 왔다. 8세손 박언부(朴彦孚)를 파조로 하는 문하시중공파를 비롯하여 도평의사공파[8세 박언상], 좌복야공파[8세 박언인], 밀직부사공파[8세 박양언], 판도공파[8세 박천익], 좌윤공파[8세 박을재], 진사공파[10세 박원], 행산공파(杏山公派)[14세 박세균] 등으로 분파되었다.
[명칭 유래]
중동 오산(梧山) 마을은 원래 봉림(鳳林) 마을로 불리다가 이후 오산 마을로 개칭되었다고 전한다. 오산 마을의 명칭 유래는 여러 가지가 전하는데, 먼저 풍수지리설에 따라 이곳 지형이 오동잎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다음으로는 오동나무가 많아서 머구실[오동나무를 뜻하는 사투리]로 불리다가 오산이 되었다고도 전한다.
[형성 및 변천]
1500년경 박유식(朴㽕植)[11세]이 울산에서 해운대 중동으로 이거하여 밀양 박씨 행산파 오산 문중(密陽朴氏杏山派梧山門中) 입향조가 되었다. 그 후 후손들이 주로 오산 마을에서 세거하였는데, 1883년(고종 20) 출판한 목판 족보를 보면 오산 마을을 비롯한 해운대 지역에 130가구 정도가 거주한 것으로 보아 엄청난 집성촌을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입향조 산소는 장산 기슭 봉후골에 있고, 묘사 때는 100여 명이 참석한다.
[자연 환경]
중동 오산 마을은 북쪽으로 춘천[대천으로도 부름]이 지나며, 북동쪽으로는 부흥봉과 광어곡에서 이어진 산지가 있고, 남동쪽은 와우산 줄기와 맞닿아 있다. 마을 내에 본래 오동잎 형상의 작은 언덕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도시화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현황]
2013년 현재 중동 오산 마을에는 밀양 박씨 30여 가구가 산다. 1992년 밀양 박씨 행산파 오산 문중 재실인 행오재(杏梧齋)를 건립하여 위패 75위를 봉안하고 있다. 매년 음력 10월 10일에 향사를 지내는데 후손 50여 명이 참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