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73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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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華明洞慶州崔氏世居地 |
영어의미역 | Daecheon-Ri Gyeong ju choi Clan Village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북구 화명동 대천리 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백이성 |
[정의]
부산광역시 북구 화명동에 있는 경주 최씨 세거지.
[개설]
경주 최씨(慶州崔氏) 문중은 『삼국사기(三國史記)』 등에 전하는 신라 개국 당시 6촌[6부]의 한 곳인 소벌도리(蘇伐都利)의 최치원(崔致遠)을 시조로 한다. 최치원의 2세손부터 7세손에 이르기까지 분파가 되며 많은 파종으로 나누어졌다. 그중 7세손 이후 생겨난 사성공파(司成公派)의 후손이 북구 화명동 대천리 마을에 정착하였다.
[명칭 유래]
대천리(大川里)란 대천(大川) 유역에 형성된 마을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대천은 하상이 넓어 ‘큰내’로 부르다가 한자 이름인 ‘대천’으로 바뀌었다고 전한다.
[형성 및 변천]
경주 최씨가 대천리에 정착한 것은 19세기 후반이다. 입향조 최종주(崔宗周)가 삶의 터전을 물색하던 중 산수 경관이 뛰어난 북구 화명동 대천리 마을을 최적지로 판단하여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입향조의 5세손인 최유수(崔有壽)는 개화기에 한약국을 운영하다 사립화명학교 설립자 대표를 맡아 초대 교감을 역임하였다. 최현국(崔鉉國)은 사립화명학교 개교 시 교칙을 맡았는데, 교육계에서 평생을 보내고 학교장까지 역임하였다.
[자연 환경]
대천리 마을 북쪽에는 부산의 진산(鎭山)인 금정산(金井山)이 자리한다. 금정산에서 발원한 대천이 흘러내려 서쪽 낙동강으로 들어간다. 대천에는 전설이 깃든 애기소 폭포와 웅덩이가 있다.
[현황]
대천리 마을은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지만 일부 옛길과 가옥들이 다수 보존되어 있다. 2013년 현재 경주 최씨 4가구만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