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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동 현풍 곽씨 세거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7337
한자 溫泉洞玄風郭氏世居地
영어의미역 Oncheon-dong Hyeonpung Gwak Clan Hometow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영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세거지
개설 시기/일시 1756년 - 곽시회(郭時檜)가 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에서 서면 산저로 이주
세거지 온천동 현풍 곽씨 세거지 -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

[정의]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에 있는 현풍 곽씨 세거지.

[명칭 유래]

온천동의 지명은 이곳의 동래 온천에서 비롯되었다. 이곳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재상 충원공이 장산국(萇山國)의 온정(溫井)에서 목욕을 하고 경주로 돌아오던 길에….”라는 기록에서 처음 등장하며, 이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을 비롯한 여러 사료에서 등장하고 있다.

[형성 및 변천]

현풍 곽씨(玄風郭氏)는 죽재공파(竹齋公派) 동래 산저(東萊山底) 문중으로 입향조 곽시회(郭時檜)[1740∼1810, 포산군 곽진(郭鎭) 후손]의 후손들이다. 곽시회가 1756년(영조 32) 현풍[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에서 서면 산저(山底)로 이주한 후, 그 후손들이 동래 향교(東萊鄕校)의 향직(鄕職)을 맡으면서 세거하였다. 1937년에 발행된 『동래군지(東萊郡誌)』에 온천동 현풍 곽씨 인물들인 곽시회, 곽용석(郭龍錫), 곽치선(郭致先), 곽성만(郭成晩), 곽영희(郭永羲)가 기록되어 있다.

온천동 현풍 곽씨 재실인 미산재(美山齋) 뒤에 있는 ‘성균 생원 현풍 곽공 시회 단비(成均生員玄風郭公時檜壇碑)’에 따르면, 성배(聖培) 곽시회는 죽재(竹齋) 곽간(郭趕)[1529∼1593]의 6세손이며, 고조할아버지 곽추(郭崷), 증조할아버지 곽홍준(郭弘埈), 할아버지 곽선(郭銑), 아버지는 곽문해(郭文海)로 되어 있다. 곽시회의 아들인 부사 곽창기(郭昌基), 손자 곽순형(郭舜衡) 등 3대가 금정산 자락에 함께 묻혔으며, 단비문을 쓴 8세손 곽영희(郭永羲)의 이름이 높다. 입향조 곽시회의 자손들로 동래 향교 도유사(都有司) 등의 직임을 맡아 힘쓴 곽상하(郭相厦), 곽필한(郭必翰), 곽상락(郭相洛), 곽필원(郭必元), 곽필화(郭必和), 곽주덕(郭儔德), 곽탄응(郭坦膺) 등이 있다.

[자연 환경]

온천동의 서쪽은 금정산지와 접하며, 산록에서 발원한 소하천이 동쪽으로 흘러 온천천에 유입한다. 온천동의 남서쪽으로는 조선 시대 동래부와 구포 지역을 이어 주던 만덕 고개가 있다. 온천천이 동의 동쪽 경계에서 북에서 남으로 흐른다.

[현황]

1904년 발간된 『경상남도 동래군 가호안』에는 온천동현풍 곽씨 3가구와 읍내리에 7가구가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들 후손들은 문중 재실인 미산재를 지어 매년 10월 제향을 지낸다. 미산재금정산 자락이 동쪽으로 뻗어 내린 미남 로터리에서 만덕 제1 터널로 들어가는 입구 오른쪽 도로변에 있다. 미산재 주변은 도시화로 인해 모두 주택가로 변하였지만, 재실과 단비(壇碑)는 소나무 숲 속에 서 있다. 2013년 현재 온천동에는 현풍 곽씨 10여 명이 살고 있다. 후손으로 안락 서원 원장과 전교를 역임한 곽영욱(郭永郁), 전교 곽영모(郭永模)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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