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73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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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壽安洞淸州韓氏世居地 |
영어의미역 | Suan-dong Cheongju Han Clan Hometow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수안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영진 |
[정의]
부산광역시 동래구 수안동에 있었던 청주 한씨 세거지.
[명칭 유래]
동래 토박이들에 의하면 수안동은 수안(首安) 또는 수안(水安)으로 쓰였다. 수안(首安)은 동래부의 수장이던 동래 부사가 집무하던 동헌이 이곳에 자리 잡고 있어 가장 으뜸 되는 관아 안이라는 뜻이며, 수안(水安)은 당시 땅 밑을 조금만 파내려 가면 물이 나오는 등 물이 흔해 붙여진 이름으로 풀이한다. 또한 이곳에 동래 읍성의 수문이 있었고 수문안의 동네라고 풀이하는 사람도 있다.
[형성 및 변천]
수안동의 청주 한씨(淸州韓氏)는 동래 지역 공신 집안이자 동래 무반의 중심을 이루는 대표적인 가문이다. 인조반정에 참여하여 정사공신(靖社功臣)이 된 서원군(西原君) 한교(韓嶠)[1556∼1627]의 후손인 한지(韓址)가 거창에서 동래로 입향하였으며, 입향 시기는 약 1700여 년경으로 추정한다. 자손들이 군관청(軍官廳)의 무임을 맡으며 향반으로 자리 잡았다. 한지의 후손으로 『동래군지(東萊郡誌)』에 기록된 인물은 손자인 부호군 한도남(韓道南), 증손인 한덕성(韓德成)[증중추(贈中樞)], 현손으로 무과에 급제한 부호군(副護軍) 한광국(韓光國)은 백성의 곽세(藿稅)를 없앤 공적으로 다대포에 구폐 불망비(久廢不忘碑)라는 송덕비가 세워졌고, 또 『동래군지』에도 열전이 실려 있다.
5세손 한경식(韓璟植)[증 병조 참판], 6세손 효자 한홍수(韓弘壽)[박사], 무과에 급제하여 오위장을 역임한 한정수(韓廷壽), 한용화(韓鎔華)[의관]가 기록되어 있다. 근대 인물로는 대동병원을 개업한 독립운동가 한흥교(韓興敎)[1885∼1967, 1990년 애국장], 한흥교의 아들로 독립군가와 항일 가곡을 작곡한 부산대학교 교수 한형석(韓亨錫)[1910∼1996, 1990년 애국장] 등이 있다.
[자연 환경]
수안동 일대는 조선 시대 동래 읍성의 남문 일대와 성 바깥쪽에 해당된다. 서쪽과 남쪽은 온천천과 접한다. 대부분이 평지이나 현재의 동래경찰서 자리에는 농주산(弄珠山)이 있었다. 풍수지리상 동래 읍성의 안산(案山) 구실을 하는 곳이었으나, 일제 강점기 착평되어 평지가 되었다. 남문에서 세병교로 이어지는 도로 일대는 지대가 낮아 일제 강점기까지만 하더라도 농사가 어려운 저지대였다. 온천천을 따라 제방이 축조되며 현재와 같이 변화되었다.
[현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