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72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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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琪淙通常服一括 |
영어의미역 | Bak Gijong Business Suits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의복/의복 |
지역 | 부산광역시 남구 유엔평화로 63[대연동 948-1]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박재혁 |
[정의]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동 부산광역시립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개항기 관료이자 경제인인 박기종의 평상복.
[개설]
박기종 통상복 일괄(朴琪淙通常服一括)은 대한제국 시기의 복식 제도를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며, 상의, 조끼, 바지가 일괄로 보존되고 있다는 점에서 복식사 연구 및 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높은 유물이다. 2012년 5월 17일 부산광역시 민속문화재 제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부산광역시 민속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연원]
상의 뒷목 둘레에 ‘아사다 테일러(ASADA TAILOR)’와 ‘경성(京城)’이라고 적힌 상표가 부착되어 있는데, 제작 시기를 고려한다면 제작자는 서양 의복의 도입이 빨랐던 일본인일 가능성이 높다. 즉, 박기종(朴琪淙)[1839~1907]의 통상복은 경성[서울]에 있는 아사다 양복점에서 일본인 기술자가 만든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박기종이 지인들과 함께 찍은 사진 속의 많은 남자들이 모두 비슷한 의상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우리나라에 있던 양복점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1978년 박기종의 장남인 박상수가 부산광역시립박물관에 일괄 기증하여 현재 부산광역시립박물관에서 보존·전시하고 있다.
[형태]
박기종의 통상복 일괄 유물로, 프록코트(frock coat)[일반 남성이 착용한 긴 웃옷과 줄무늬가 있는 바지의 한 벌] 1점, 조끼 2점, 바지 1점의 총 4점이다. 박기종의 프록코트는 1907년(순종 1)에 개정된 「문관 복장 규칙」 제4조 소례복 일습(小禮服一襲)의 연미복과 프록코트의 규정 가운데 프록코트와 같은 형태이다. 모자만 빠져 있으며 나머지는 똑같은 구성을 하고 있다.
[용도]
박기종이 프록코트를 입고 지인들과 찍은 사진 등을 볼 때, 생전에 착용을 하였던 의상으로 당시 관직에 있던 사람들의 의복은 대부분 이미 서구식으로 변화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소례복의 프록코트는 궁내에 진현할 때, 각 국경절에 하례할 때, 개인적으로 서로 예를 갖추어 방문할 때 착용하도록 되어 있다. 박기종의 프록코트와 조끼와 바지는 1900년(고종 37) 「문관 복장 규칙」 제8조의 상복 일습(常服一襲)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미 박기종이 대한제국 시기에 착용하던 통상복으로 생각된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프록코트는 원래 근세 신사들의 대표적인 정장이다. 일반적으로 웃옷은 검정이나 짙은 회색이고, 바지는 회색 또는 검정의 줄무늬이다. 상의 길이가 무릎까지 오는 형태로 잉글리시 코트, 프린스 앨버트라고도 한다. 싱글 또는 더블로, 허리 라인에 절개선이 있고 아랫자락이 무릎까지 원통형으로 늘어지며, 등 부분에 트임이 있다.
상(喪) 중에는 검정색으로 입는다. 서양에서는 17세기에 이미 그 형태가 나타나 18세기 말까지 계속되었다. 일반인이 입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 영국에서 유행하면서부터이었다. 그 당시는 예복으로서는 물론 평상복으로도 입어 풀 먹인 셔츠에 검은색 나비넥타이를 사용하였다. 1890년(고종 27) 무렵에는 더욱 쇠퇴하여, 예복도 모닝코트·연미복으로 대체되었다.
우리나라에는 1900년을 즈음하여 도입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프록코트는 요즘 정장이 재킷 위주로 바뀌면서 과거의 옷으로 치부되어 거의 입지 않지만 개성을 강조하는 패셔니스트들은 프록코트를 활용한다. 전통적이고 격식을 차린 정장에 어울리는 체이스필드 코트도 프록코트를 기본으로 유행에 맞춰 변형시킨 제품으로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전통적 스타일에서 라인이나 디테일에 변화를 줘 프록코트라는 이름으로 소개되는 코트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