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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6970
한자 移住民
영어의미역 Migrant People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동일

[정의]

국내 타 지역 또는 국외에서 부산광역시로 이주해온 사람들.

[개설]

부산광역시는 개항 이후 작은 어촌에서 근대 도시로 성장했고, 광복 이후 6·25 전쟁을 겪으며 제2의 도시로 성장하였다. 광복 이후 부산은 해외 귀환 동포와 월남 동포의 29.1%가 정착하였고, 1949년과 1954년 사이에는 연평균 19%의 인구 증가로 이주민들이 유입되었으며, 1960년대 후반부터는 이농 인구가 유입되어 정착하게 되었다. 이처럼 부산의 성장 과정에서 나타난 인구 증가는 외지인들의 이주로 인해 두드러지게 되었으며, 따라서 부산은 이주민들에 의해 구성된 도시로도 볼 수 있다.

[근대 도시로의 성장과 이주민]

1876년 개항 이전 조선의 변방에 불과했던 부산은 개항과 동시에 식민 도시로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초량에 설정된 일본 전관 거류지에 일본인들이 이주해 오며 일본인 인구가 꾸준히 증가했고, 부산항과 철도 및 도로 건설 등 도시 기반 시설의 축조로 외지에서 노동자들이 모여들며 부산 인구가 급증하게 되었다. 초기에 중구를 중심으로 한 일본인 전관 거류지에서 이주 일본인 인구가 높은 증가율을 보였고, 영도동구서구 등 일본인 전관 거류지 주변은 노동력 제공을 위해 외지에서 몰려든 노동자들로 조선인 인구가 급증하게 되었다. 이는 상공업의 성장과 토지 조사령으로 인한 농가 파탄으로 농촌에서 인구가 유입되었거나 부산항의 시설 공사 때문에 전국에서 노동자가 유입되었기 때문이었다.

부산 거주 일본인 인구는 국권 강탈 당시 2만 3,900명에서 1944년에는 6만 1,018명으로 증가하여 32년간 260.32%의 증가율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부산 지역의 조선인 인구 증가율은 468.54%로 월등히 높았다. 당시 몰려든 조선인들은 동구수정산이나 영도봉래산 기슭에 터전을 마련하며 거주지를 형성하였다. 부산의 인구 증가는 행정 구역의 확장과 더불어 식민지 공업화로 인한 인구 유입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부산은 일본이 한국으로부터 공업 원료 및 식량을 수입하고 공산품을 수출하는 주요 항구였고, 경부선동해 남부선 등 철도의 시발점이고 부산항이 있는 교통 요지였다. 따라서 이로 인해 상공업이 발달하였기 때문에 부산은 지속적인 인구 유입이 발생하며 더 많은 이주민들이 몰려드는 도시가 되었다.

[광복과 6·25 전쟁 이후의 이주민]

1945년의 광복과 6·25 전쟁 이후인 1955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부산은 급격한 인구 변동을 겪게 되었다. 먼저 광복을 맞이하며 부산은 전년 대비 14.3%의 인구 감소가 나타났다. 이는 광복으로 인해 부산 거주 일본인이 신속하게 철수하였으나, 귀환 동포가 상대적으로 느리게 귀환하였거나 부산에 일시적으로 체류하고 연고지로 흩어졌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1946년부터는 일본에서 유입된 귀환 동포 때문에 부산 인구가 급증하게 되었으며, 6·25 전쟁 기간에는 피난민의 유입으로 79.2%의 인구 증가를 보이게 되었다. 이 추세는 6·25 전쟁이 끝나고 임시 수도 부산의 시대가 끝난 후에도 지속되었다. 서울에서 몰려든 피난민들은 돌아갔으나, 전후 혼란기에 경상남도 등지의 농촌 인구가 대거 부산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광복부터 6·25 전쟁 이후의 혼란기 동안 부산으로 유입된 이주민들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형성된 도심부 주변의 빈민 거주지를 더욱 강화하는 측면이 있었다. 현재의 원도심 주변 산복 도로 지역은 이 시기를 거치며 강화된 도시 구조의 일면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산업화와 이농 인구]

1960년에는 피난민의 복귀가 이루어져 부산의 이주민들이 급속하게 빠져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1962년 경제 개발 계획, 1963년 직할시 승격 등으로 부산에 경제 투자가 집중되면서 인근 배후지로부터 오는 이주민들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에는 다른 대도시에 비해 인구 증가가 덜하였으나, 1970년대에는 대도시와 수출 지향적 산업에 대한 투자 집중으로 부산으로의 산업 집적이 지속되었고, 울산·마산·창원 등 인근 도시의 공업 발달로 중추 관리 기능이 증가하며 주변 농촌 지역으로부터의 인구 유입이 지속되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 국내 산업 위축과 부산항의 물동량 감소, 대도시를 제외한 정부 투자와 타 지역으로의 공업 분산 등으로 인해 점차 부산의 인구 증가세가 둔화되었고, 이로 인해 이주민의 증가세도 둔화되었다.

[세계화의 추세 속 변화하는 부산]

2010년대에 들어 부산은 산업 구조의 약화와 교외화로 인해 인구 감소를 경험하고 있으며 이주민 인구도 역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주민 감소세 속에서 1990년대 이후 두드러지는 현상 중 하나는 이주 노동자와 이주 결혼 여성 등 국내로 유입되는 외국 이주민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산은 조선 시대 왜관이 있어 일찍부터 외국인과의 교류가 있어왔던 지역이었고, 개항기에는 일본인과 중국인의 조계지 확장 요구로 외국인의 유입은 많았던 지역이었다. 그러나 2014년 현재 나타나는 외국인 이주민들은 세계화의 추세 속에서 경험하게 되는 새로운 형태의 이주민들이며, 앞으로도 지속될 부산의 미래이기도 하다.

1. 새로운 시민의 등장

1960년만 해도 국내로 유입된 외국 이주민의 수가 약 8,600명에 불과했으나, 2011년 6월 현재 약 140만 명으로 반세기가 지나는 동안 약 162배 증가했다.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 이주민의 규모가 증가하면서 이들의 출신국도 다양해졌는데, 1960년에는 거주 외국 이주민의 약 60%가 미국인이었지만, 2011년 현재는 미국을 포함하여 200여 개의 국가로 확대되었고, 특히 중국 국적 이주민이 크게 증가하였다.

또한 이들의 거주 목적도 1960년에는 상용 자격[27.1%], 거주 및 방문[20.4%], 관용 및 외교[20.2%], 문화 용무 및 종교[13.7%], 군 관계[11.2%], 관광[7.1%] 등 주로 대기업이나 외교 관계 등 특정 몇몇 분야로 한정되었다. 그러나 2011년에는 이들의 거주 자격이 사증 면제 및 관광 통과[7.5%], 단기 상용 및 취업[7.2%], 유학 및 연수[10.5%], 교수 및 비전문 취업[21.2%], 방문 동거 및 거주 일반[26.4%], 방문 취업[22.7%], 기타[4.4%] 등으로 그 목적 또한 다양해지고 있다.

부산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 이주민의 규모는 1988년 3,804명에서 2010년 3만 2,471명으로 22년 동안 약 8.5배 증가하였다. 부산의 외국 이주민 인구는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약 3,900명 이하 수준을 유지하였으나, 1992년부터 크게 증가하면서 부산시 전체 인구의 0.1%를 기록했고, 2010년에 이르러 0.9%를 넘어서게 되었다. 부산의 외국 이주민 인구의 증가는 1980년대 이후 세계화 과정에 따른 세계 경제 질서의 재편과 국내의 사회 경제적 조건의 변화에 따른 결과이다. 198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의 산업 구조 고도화 전략에 따라 3D 업종에서의 취업 기피로 중소 제조업체의 인력난이 극에 달하자 이 시기를 전후하여 한국으로 일하러 오는 노동자들이 차츰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국제결혼으로 유입된 부산의 외국 이주민 경우 2006년 1,466명에서 2010년에는 1,777명으로 증가하였다. 2010년 현재 부산의 국제결혼은 전체 혼인의 약 8.8%로 전국 수준보다는 낮지만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한국으로 공부하러 오는 외국인 유학생의 규모도 최근 급증하였다. 국내에 거주 외국인 유학생의 수는 2003년 1만 2,314명에서 2010년 현재 8만 3,842명으로 불과 7년 사이에 약 7배 증가하였다. 국내에 거주 중인 외국인 유학생은 국적별로 중국 출신 유학생이 5만 7,783[68.9%]명으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일본[3,876명, 4.6%], 몽골[3,333명, 4.0%], 미국[2,193명, 2.6%], 베트남[1,914명, 2.3%], 대만[1,419명, 1.7%] 순인 것으로 나타나, 한국 거주 외국인 유학생은 주로 아시아 지역, 특히 중국에서 많이 유입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2. 다문화 공간으로의 부산

부산의 외국인 이주민의 역사는 조선 시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고, 특히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외국인 이주민에 의해 형성된 공간 구조는 현재의 부산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조선 시대에서 구한말에 이르기까지 일본이나 중국 상인과의 교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왔었고, 조선이 대외 개방을 하면서 중국이나 일본이 아닌 서양인이 부산을 거쳐 가기도 하였다. 또한 일제 강점기에는 부산이 한국 침략과 대륙 진출의 전초 기지가 됨에 따라 많은 일본인이 부산을 거점으로 생활하였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일본인에 의해 부산은 식민지 도시로서 독특한 도시 구조를 보이게 되었다. 먼저, 기존 거주지와 신흥 거주지의 분리 현상으로 거주 공간은 과거의 동래부 지역인 도시의 구 시가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전통적 거주 지역과 일본인에 의해 개발된 신흥 거주 지역으로 분리되었다. 둘째, 민족별 거주지의 공간적 차별성으로서 일본인 거주 지역과 조선인 거주 지역의 분리뿐만 아니라 중국인, 기타 외국인의 거주지가 공간적으로 분화되어 나타났다. 또한 외국 이주민 밀집 지역이 형성되기도 했다. 2014년 현재는 외국인 거주 밀집 지역을 형성하지는 못하지만, 국제 시장과 상해 거리 등 이주 노동자와 이주 결혼 여성 및 다문화 가정의 자녀, 화교 등이 밀집한 상업지를 통해 커뮤니티의 중심을 만들어 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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