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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5973
한자 中央聖堂
영어공식명칭 Chungang Cathedral of Catholic Busan Diocese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중구 용두산길 9[대청동 1가 48]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한 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성당
설립자 이명우[야고보]
전화 051-246-4284
설립 시기/일시 1948년 6월 20일연표보기 - 축성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48년 8월 1일 - 이명우[야고보] 주임 신부 부임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56년 9월 30일 - 1차 신축 준공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60년 5월 1일 - 성가 신용 협동조합 설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73년 5월 1일 - 2차 신축 준공 축성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8년 6월 15일 - 3차 성당 증개축 축성
최초 설립지 중앙성당 - 부산광역시 중구 용두산길 9[대청동 1가 48]지도보기
현 소재지 중앙성당 - 부산광역시 중구 용두산길 9[대청동 1가 48]지도보기

[정의]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동에 있는 천주교 부산교구 소속 성당.

[설립 목적]

부산광역시 중구를 중심으로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설립하였다.

[변천]

해방 이후 중구 관내에 성당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미군 군종 신부의 협조로 지은사 법당을 인수하여 내부 보수를 한 후 1948년 6월 20일 중앙성당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8월 1일에 초대 주임 신부로 이명우[야고보]가 부임하였다. 1956년 9월 30일 1차 신축 공사를 마무리하고 축성식을 가졌다. 1957년 1월 21일 부산교구가 설립되고 주교좌성당으로 설정되었으며, 교구청이 성당 안에 설치되었다. 1960년 5월 1일에는 전국 최초로 성가신용협동조합이 설립되었다. 1964년 교구청이 이전하였고, 2차 신축 공사가 시작되어 1973년 5월 1일에 현 대성전이 축성되었다. 1998년 6월 15일에 25년이 지난 성당을 증개축하여 축성하였다. 본당 설립 50주년을 맞이하여 『중앙성당 50년사』를 발간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본당 미사는 일요일 오전 6시 30분, 10시, 12시, 오후 6시, 8시 등 다섯 차례가 열린다. 평일 미사는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오전 6시 30분, 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오후 7시에 있다. 토요일에는 오후 4시 30분에 어린이 미사가, 오후 7시에 특전 미사를 겸한 중고등부 미사가 있다. 연 2회 이상 세례식을 거행하며 1년에 150~200명의 신자가 세례를 받는다. 부산의 중심 상권에 속해 있어 거주 신자보다 주말 유입 신자가 많기 때문에 그들을 위한 사목적 배려를 하고 있다. 또한 주변에 각종 상가가 밀집되어 있어 그들을 위한 직능 사목을 펼치면서 지역 사회 복음화에 앞장서고 있다.

중앙성당은 부산교구 설립 이후 주교좌성당으로 설정되어, 부산교구의 크고 작은 행사를 치러왔으나, 1990년대 중반 이후 남천성당이 주교좌성당으로 설정되고 교구청이 남천동으로 이전하면서 행사가 많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아직도 지역 복음화를 위해 신자들이 거리 청소를 하고 도로 차량 유도 봉사 등을 하면서 중앙성당 홍보 및 지역 사회 봉사 참여에 힘쓰고 있다. 또한 노인 대학을 설치하여 노인들의 신앙과 건강한 생활을 유도하고, 성당 관내의 어려운 이웃들을 면밀히 파악하여 복음 정신을 통한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현황]

2013년 현재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를 중심으로 연도회, 루카회, 다미아노회, 성십자가회 등 많은 단체들이 있다. 교역자로는 주임 신부 1명 부주임 신부 1명, 보좌 신부 1명 수녀 3명, 사무장 1명, 사무원 1명 관리인 등이 있다. 교우 수는 7,479명이며, 수호성인으로 성십자가를 모시고 있다. 대지 면적은 2,500㎡이며, 주요 건물은 성당·사제관·수녀원·강당으로 건물 면적은 5,808㎡이다.

[의의와 평가]

부산교구의 주교좌성당으로 1950~90년대 중반까지 부산교구의 중심 역할을 해왔다. 중앙성당에서 초량성당, 신선성당, 서대신성당, 초장성당, 송도성당, 동대신성당, 영주성당이 분리되어 설립되었다. 남천성당이 주교좌성당으로 설정되면서 교구의 중심축이 양분되었지만, 여전히 교구의 역사와 함께하며 도심 상권의 중심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지역의 특성에 맞는 복음화 사목을 펼친다면 앞으로도 교구 발전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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