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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생유치원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5932
한자 共生幼稚園
영어의미역 Gongseng Kindergarten
분야 문화·교육/교육,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중구 용두산길 9[대청동 1가 48]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전영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유치원
설립자 부산공생원
설립 시기/일시 1929년 6월연표보기 - 설립
최초 설립지 공생유치원 -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동 1가 48지도보기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동에 있었던 사립 유치원.

[설립 목적]

부산공생원은 일제 강점기 부산의 일본 정토종 사찰인 지은사 주지 대전수산(大田秀山)이 히로히토[裕仁] 황태자 성혼 기념사업과 정토종 개종 7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일본인 신도 및 일반인들로부터 기부금을 받아 창립하였다. 부산공생원은 지은사 본당을 임시 원사로 하여 산하에 교화부, 학원부, 유원부 등 5부를 개설하였다. 개설 목적은 조선인의 정신적 문화를 개척하고, 물질적 생활의 향상을 도모하며, 대승 불교의 근본 정신인 공생(共生)의 염원을 성취하기 위함이었다. 즉 식민지 교육 차원에서 조선인의 유아들을 교육시키기 위하여 만든 교육 기관이다.

[변천]

1924년 4월 10일에 설립된 부산공생원의 아동 유원부에서는 지은사 앞 우편국 관리지 약 660㎡[200평]를 빌려 그네, 미끄럼틀, 모래판, 회전 그네 등을 설치하고 일본인과 조선인 아이들이 놀 수 있도록 하였다. 1929년 6월부터는 따로 유치원부를 독립해 5~9세 유아를 보육하였다. 이 당시 원장은 부산공생원을 세운 대전수산이었다. 1945년 9월 이형우, 이동선, 박지홍 등이 수정동의 전 동아중학교 자리에 있던 공생유치원을 빌려 학생문화동지회(學生文化同志會)를 조직하고 10월 중순까지 한글 운동을 전개하였다. 폐교 시기는 알 수 없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부산공생원은 주로 조선인을 대상으로 인보 사업(隣保事業)의 일환으로 여성 교육과 아동 보호 사업을 실시하였다. 이에 공생유치원도 조선인 아동을 대상으로 교육 활동을 하였다. 『일제 시기 재부산 일본인 사회 사회단체 조사 보고』에 나타난 연도별 학급과 학생 현황을 살펴보면, 1930년 학급 수는 2개, 직원 수는 5명, 학생 수는 남자 40명, 여자 22명이다. 1931년 학급 수는 2개, 직원 수는 3명, 학생 수는 남자 43명, 여자 37명이다. 1932년 학급 수는 1개, 직원 수는 2명, 학생 수는 남자 42명, 여자 33명이다. 1933년 학급 수는 2개, 직원 수는 4명, 학생 수는 남자 27명, 여자 26명이다. 1934년 학급 수는 2개, 직원 수는 4명, 학생 수는 남자 67명, 여자 47명이다. 1936년 학급 수는 2개, 직원 수는 5명, 학생 수는 남자 67명, 여자 51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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