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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공생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5819
한자 釜山共生園
영어공식명칭 Busan Gongsaengwon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전성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회사업 시설
설립자 지은사 주직 태전수산(太田秀山)
설립 시기/일시 1924년 4월 10일연표보기 - 설립
이전 시기/일시 1926년 3월 -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동에서 영주동으로 이전
이전 시기/일시 1928년 2월 11일 -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에서 동구 수정동으로 이전
최초 설립지 지은사 -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동[구 부산부 대청정 1정목]
주소 변경 이력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
주소 변경 이력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동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 있었던 사회 사업 시설.

[설립 목적]

부산공생원은 부산의 일본 정토종 사찰인 지은사(知恩寺) 주직(住職)[주지] 태전수산(太田秀山)이 히로히토 황태자의 성혼 기념사업과 정토종 개종 750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일본인 신도 및 일반인들로부터 기부금을 받아 창립하였다. 그 목적은 “조선인의 정신적 문화를 개척하고, 물질적 생활의 향상을 도모하며, 대승 불교의 근본정신인 공생(共生)의 염원을 성취하기 위함”이라 하였다.

[변천]

1924년 4월 10일 지은사 본당을 임시 원사(園舍)로 삼아 창립하여 산하에 교화부, 학원부, 수산부(授産部), 유원부, 모유소개부의 5부를 개설하였다. 1926년 3월에는 부산부 영주정으로 이전하여 다시 탁아부, 조사부, 아동건강상담부를 개설하였다. 1928년 2월 11일 사업 장려 하사금을 받은 것을 기념하여 수정정에 새로운 원사를 건축하고 새로 실비진료부를 설치하였다. 1930년에는 차용지 1,432㎡[434평]와 인근 땅 273.9㎡[83평]를 구입하고 공비 5,852엔으로 건평 240.9㎡[73평]에 내부 교실 3칸, 실비진료실 4칸, 콘크리트 정문 및 블록 담 32칸을 증축하였다. 1931년 12월에는 3,000엔의 하사금을 받아 경상남도와 부산부가 참여하는 재단 이사회를 개최하였고, 1,700엔의 예산으로 1933년 은사 기념 강당을 신축하였다. 1934년에는 모자요양사부(母子寮養事部)를 창설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부산공생원은 주로 조선인을 대상으로 한 인보 사업(隣保事業)의 일환으로 여성 교육과 아동 보호 사업을 실시하였다. 각 부서의 주요 사업과 업무는 다음과 같다.

아동 보호 사업으로 우선, 탁아부[공생 탁아소]에서는 노동자 등 3세~6세의 영세민 유아를 주간 동안 보육하였는데, 탁아료는 1일 5전이었다. 아동유원부[공생 유원]에서는 지은사 앞 우편국 관리지 660㎡[200평]를 빌려 그네, 미끄럼틀, 모래판, 회전 그네 등을 설치하고 일본인과 조선인 자제가 와서 놀 수 있도록 하였다. 1929년 9월부터는 따로 유치원부를 독립시켜 5세~9세의 유아를 수용하여 보육하였다. 모유소개부[모유소개소]는 모유가 과잉인 자와 결핍인 자를 중개하여 상호 부조하도록 하였다. 탁아부 부설로 개설된 아동건강상담부는 탁아의 건강 진단을 행하였는데, 1928년 새 원사가 낙성되자 궁빈자를 위한 실비진료부로 전환하였고, 이후 공생 의원으로 궁빈자에 대한 무료 진료를 행하였다.

여성 교육과 관련해서는 학원부[공생여학교]를 설치하여 조선인 부인에게 종교적 신념을 심어주기 위해 고등과, 실무과, 야학과를 설치하여 실시하였는데, 고등과의 경우 여자 고등 보통학교 정도의 지식과 가정 부업의 기능을 2개년 간의 기간 동안 습득할 수 있도록 하였다. 실무과의 경우 배움의 기회가 적은 12세~25세의 부인에게 일본어, 조선어, 수학 등과 양말 만들기, 재봉틀, 기타 가정 부업을 습득케 하였다. 야학과의 경우 주간 노동자 및 보통학교 입학을 지원하고서도 들어가지 못한 여자에게 야간 2시간을 활용하여 예배, 수신, 일본어, 조선어, 작법(作法), 창가 등을 가르쳤다. 더불어 월사금은 받지 않았고 서적 대여와 취직 소개도 하였다. 이외에도 일반적인 사회사업으로 인사상담부, 구제부[구호부], 공생 이발소, 공생 농장 등을 설치하는 한편, 마약 중독자 교화 등의 사업도 진행하였다.

[의의와 평가]

부산공생원은 일본인 사찰 정토종 지은사에서 운영하였던 사회사업 시설로, 사회 하층 조선인을 상대로 탁아와 보육, 여성 교육 등의 복지 사업을 행하였으나, 그 실제 목적은 종교를 이용하여 식민 통치에 부담이 되는 위험 요소를 순화시키거나 폭발력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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