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64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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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淨土宗知恩寺 |
영어음역 | Jo Chang-seop |
분야 | 종교/불교,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사찰 |
지역 |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동 1가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정미숙 |
[정의]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동에 있었던 일본불교정토종 소속 사찰.
[개설]
일제는 조선을 식민지로 개척하는 과정에서 불교나 신도 등 종교를 앞세워 정신적, 문화적 침투를 도모하는 한편 아래로부터 조선의 민중을 포섭하고자 하였다. 1877년(고종 14) 9월 부산의 개항과 함께 일본 정부의 요청으로 조선으로 진출한 정토진종(淨土眞宗) 오오타니파[大谷派]는 호국(護國)·호법(護法)의 일치를 표방하면서 포교를 개시하였고, 그 뒤를 이어 일련종(日蓮宗)이 포교를 시작하였다. 청일 전쟁을 계기로 정토진종 혼간지파[本派]와 정토종(淨土宗)이 새롭게 진출하였고, 이어 진언종(眞言宗)과 조동종(曹洞宗), 임제종(臨濟宗) 등이 조선으로 진출하여 별원과 포교당 등을 만들고 포교 활동을 시작하였다.
[건립 경위 및 변천]
정토종 본산에서 삼우전지문(三隅田持門)을 부산에 파견하였다. 1897년(고종 34) 9월 18일 당시 정토종의 명을 받아 관청의 인가를 얻어 처음으로 본정 3정목 25번지[현 부산광역시 중구 동광동 3가] 송전재조(松前才助)의 집에 교회소(敎會所)를 설치하여 정토종 지은사(淨土宗知恩寺)를 개교하였다. 그리고 1898년(고종 35) 11월 현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동 복병산(伏兵山)에 당우(堂宇) 건축 공사를 기공하여 다음해 8월 11일에 준공하였다.
1907년(순종 1) 3월 1일 정토종 지은사가 있던 복병산의 굴착으로 인해 사원을 해체할 수밖에 없게 되어 일시적으로 임시 포교소를 토성정 2정목 30번지[현 부산광역시 서구 토성동 2가]에 설치하였다. 1910년(순종 4) 8월 대청정 1정목[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동 1가]에 당우를 다시 지어 옮겼다. 흔히 보덕산 지은원 지은사(報德山智恩院智恩寺)라고 칭하였다.
[활동 사항]
포교 활동과 종교 의례 등을 주관하였다. 1912년 당시 신도 수는 300여 호를 헤아려 신도 수에 있어서는 양 본원사(本願寺) 다음으로 많았다. 신도들의 쌀, 돈 등의 보시와 임대 수입 등으로 유지하였으며, 주임 승려는 강부학응(岡部學應)이었다. 1931년 주지는 도원진아(稻垣眞我)이었으며 1931~1934년에는 일본인 신도가 1,500호 이상이며 조선인도 꾸준히 증가하였다.
[의의와 평가]
개항기 일본 불교가 조선에 침투한 상황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