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4688 |
---|---|
한자 | 釜山投資金融 |
영어공식명칭 | Busan investment Finance Company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로 72[부평동 1가 1-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장지용 |
[정의]
부산광역시 중구 부평동 1가에 있었던 금융 기관.
[개설]
1973년 세계 유류 파동으로 인한 세계 경제의 위축, 자원난과 브레튼우즈 체제[Bretton Woods system]의 붕괴 등으로 한국 경제는 새로운 시련을 맞게 되었다. 국내적으로는 10월 유신과 8·3 조치 기업 공개 등의 커다란 정책 변화가 일어났다. 이에 따라 기업은 계속적인 자금 부족과 압박으로 인하여 사금융에 의해 자금을 조달하게 되었고, 재무 구조는 만성적인 취약 상태에 있었다. 이에 사금융을 제도 금융으로 유도하고, 유휴 자금의 산업화를 꾀하여 상공업체의 금융 비용 절감과 자본 시장 개방의 기초를 마련하고자 하는 것은 모든 부산 지역 상공인들의 여망이었다.
때를 같이하여 1972년 8월 17일, 정부에서는 거액의 사채 자금을 흡수, 매개하여 기업의 단기 자금 수급을 원활하게 하는 한편, 은행 예금 이자 소득만으로 만족할 수 없는 거액 유휴 자금의 보유자에게 새로운 금융 저축 수단을 제공하기 위하여 단기 금융 회사의 설립을 유도할 목적으로 「단기 금융업법」을 제정·공포하였다.
이에 부산상공회의소에서도 단자 회사의 설립에 관계되는 제반 문제에 대해 그해 4월 7일부터 동년 4월 28일까지 제조업계 250개 업체와 상업, 서비스업, 경제 단체 등 비제조업체 150개 업체에 대해 기초 자료 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금융 기관의 다양화 및 전문화에 대한 현실적인 요청에 부응하지 못하는 현 금융 기관의 대출 업무에 수반되는 담보물 평가 문제와 복잡한 수속 절차상의 애로 등의 문제점들이 노정됨으로써 이용상의 편익이 예견되는 단자 회사의 설립이 크게 필요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설립 목적]
부산투자금융은 민간 금융 시장 및 자본 시장의 육성을 지원하고, 이와 관련된 업무를 행함으로써 국민 경제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설립되었다.
[변천]
부산상공회의소 회장 강석진은 1972년 2월 25일에 동명목재상사 회의실에서 개최된 제81회 부산상공회의소 의원 총회에서, 부산상공회의소가 모체가 되는 부산 지방 단기 금융 회사의 설립을 조속한 시일 내에 추진하기로 합의하고 곧 실천 단계에 옮겼다. 부산상공회의소 의원들이 구상한 설립 방법으로는 첫째, 회사의 성격은 단기 금융업으로 하는 주식회사로 하고, 둘째, 회사의 자본금은 납입 자본금 5억 원으로 하며, 셋째, 회사의 업무는 어음 관련 업무와 유가 증권 업무 등으로 한다고 결의하였다.
「단기 금융업법」의 제정을 계기로 단자 회사 설립을 위해 배전의 노력을 경주해 오던 부산 상공업계는 1973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설립 계획을 제시하였다. 당시 설립 추진 작업을 벌여 오던 서울투자금융은 1973년에 내인가를 얻어 창립총회를 개최하였고, 동년 1월 30일에 설립 등기를 마치고 우리나라 두 번째의 단기 금융 회사로 탄생하였다. 이에 강석진이 주축이 된 부산 상공업계는 단기 금융 회사의 설립을 서두르게 되었고, 단기 금융 회사 업무를 연구해 오던 부산은행이 1973년 2월 3일에 부산투자금융의 발기인으로 가입 결정되어 그해 2월 28일에 부산은행장실에서 발기인단을 구성하고 공식 모임을 갖기로 하였다.
강석진을 비롯하여 부산상공회의소, 부산은행 임원 및 다수의 재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임시회가 개최되었고, 발기인단을 동년 3월 13일까지 결성하기로 하면서 설립에 관한 실무는 부산은행에 위임하였다. 부산은행을 발기인 대표로 위촉하였고, 당사 설립 시에 발행하는 주식의 수는 10만 주[10억 원]로 하되 이 중 발기인은 5만 주[5억 원]만을 인수하고 잔여 주식 5만 주에 대하여는 주식 청약서를 작성하여 일반 공모하기로 원칙을 세웠다.
이후 부산은행은 정관 초안 작성에 착수하였고, 같은 해 3월에 발기인을 대표하여 재무부 장관에게 단기 금융업 내인가를 신청하여 동년 3월 8일에 재무부로부터 인가를 얻는 등, 준비 작업과 함께 그해 3월 13일에 부산은행장실에서 발기인 대회를 개최하였다. 이날 확정된 법인 1개 사와 11명의 부산투자금융 설립 발기인은 부산은행[발기인 대표], 강석진[동명목재상사 회장], 서재식[부산은행 대표 이사], 박정관[한흥석유 대표 이사], 왕상은[협성해운 대표 이사], 강기수[동명목재상사 부사장], 안범수[부산상공회의소 상근 부회장], 박장길[부산은행 전무 이사], 박태주[부산은행 상무 이사], 김응종[부산은행 상임 감사], 이동설[미성건설 대표 이사]이었다.
동년 5월 19일 오전 10시에 창립총회를 부산직할시 중구 동광동 1가 1번지 부산은행 강당[부산 데파트 4층]에서 개최하였고, 같은 해 5월 24일에 본점의 주소를 부평동 1가 1-1번지에 두어 설립 등기를 하였다. 발행 주식 총수 10만 주[보통 주식]와 이사, 감사는 초대 임원 전원의 이름으로 하여 등기를 마쳤다. 그해 5월 29일에 부산직할시 중구 동광동 1가 1번지로 본점을 이전하였고, 동년 6월 15일 오전 9시에 부산 데파트 4층에서 상임 임원 3명, 직원 9명과 각계 인사, 발기인 등 많은 시민이 참석한 가운데 개업식을 가졌다.
1980년 6월에 동명목재 회장 강석진과 아들 강정남이 가지고 있던 부산투자금융의 주식 84만 주를 증권 시장에서 럭키그룹[LG그룹]에게 이양하였다. 이에 따라 럭키그룹이 부산투자금융 총발행 주식 300만 주의 28%를 확보하여 경영권을 행사하게 되면서 부산투자금융은 럭키그룹으로 편입되었다. 1994년 2월에 종합 금융 전환을 신청하였고, LG종합금융으로 개칭하였다. 1999년 10월에는 LG증권에 흡수 합병되어 LG투자증권으로 개칭되었다. 2005년 3월에는 LC투자증권이 우리증권에 흡수 합병되었고, 그해 4월에 우리투자증권으로 상호를 변경하였다.
2014년 6월에 우리투자증권이 NH농협증권에 흡수 합병되어 NH투자증권으로 상호를 변경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부산투자금융은 어음 및 채무 증서의 발행과 어음의 할인과 매매, 어음의 인수와 보증, 어음 매매의 중개, 앞 각호의 부대되는 업무로 재무부 장관의 승인을 얻은 업무를 행하였다.
[의의와 평가]
부산투자금융은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설립된, 부산 지역 최초의 단기 금융 회사였다. 부산 지역 상공업계의 음성적인 사채 자금을 끌어내고 단기 금융 자금의 유통을 원활하게 하는 역할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