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38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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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竹峴堰 |
영어음역 | Jukhyeon-eon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지명/고지명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장동|해운대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수한 |
[정의]
조선 후기 동래부 동면 일대에 있던 제언.
[형성 및 변천]
조선 시대 제언(堤堰)의 축조는 크게 두 시기로 구분된다. 우선 태종과 세종의 적극적 정책으로 조성된 제언은 『경상도 속찬 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를 통해 확인된다. 이 시기 경상도에만 721곳의 제언이 축조되었으며, 동래부에도 6곳이 수축되었다. 이러한 건국 초의 제언 수축은 18세기 말에 이르면 절정에 달한다. “전국에 제언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수가 급격히 증가한 것이다. 죽현언(竹峴堰) 역시 이 시기 수축된 동래부의 제언 9곳 가운데 하나이다.
『동래부 읍지(東萊府邑誌)』[1832]에 기록된 8개 제언 가운데 하나인 죽현언은 『동영지(萊營誌)』[1850]를 거쳐 『동래부 사례(東萊府事例)』[1868], 『동래부 사례』[1895]까지 이름이 확인된다. 죽현언의 규모는 둘레 약 131.52m[434척], 길이 약 48.48m[160척], 폭 약 28.79m[95척]이며 평균 수심은 약 1.52m[5척]이었다. 그러나 1899년 필사된 『동래부 읍지』 제언조에는 빠져 있는 것으로 볼 때 이 시기를 전후해서 수명을 다한 것으로 보인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동래부 읍지』를 보면 죽현언은 동부(東部)에 위치하고, 같은 시기 읍지(邑誌)류에는 부(府)에서 약 3.14㎞[8리], 약 4㎞[10리] 떨어진 곳에 있다고 하나 정확한 위치는 확인할 수 없다. 다만 그 거리와 방향을 보면 지금의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장동과 해운대구 일부에 해당한다.
[관련 기록]
1740년에 펴낸 『동래부지(東萊邑誌)』 제언조에 “죽현언은 동래부 동쪽 8리 되는 곳에 있다. 방죽의 길이는 160척이며 폭은 95척이다[竹峴堰在府東八里長一百六十尺廣九十五尺]”라고 기록되어 있고, 1759년에 펴낸 『동래부지』 제언조에는 “죽현언은 동래부 동쪽 8리 되는 곳에 있다. 못의 둘레는 434척이며 물 깊이는 5척이다[竹峴堰在府東八里周四百三十四尺水深五尺]”라고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