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3510 |
---|---|
한자 | 大平浦 |
영어음역 | Daepyeong-po |
이칭/별칭 | 풍발포,대풍포,왜포 |
분야 | 지리/자연 지리,역사/근현대 |
유형 | 지명/고지명 |
지역 | 부산광역시 영도구 대평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성환 |
[정의]
일제 강점기에 매립된 부산광역시 영도구 대평동에 있던 포구.
[명칭 유래]
대평포(大平浦)는 영도구 대평동과 남항동 사이에 있던 곳으로 원래 풍발포(風發浦)라 불렸다. 풍발은 바람이 이는 것처럼 기운차게 일어난다는 뜻으로 지세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다. 풍발포는 일제 강점기에 어업 전진 기지로 개발되며 매립이 이루어졌는데, 당시 파도가 거칠고 바람이 강해 대풍포(大風浦)로 불렸다. 이후 1947년 일본식 지명을 정리하면서 파도와 바람이 잔잔해지길 바라는 뜻에서 풍(風)을 평(平)으로 바꾸어 대평포가 되었다.
[형성 및 변천]
대평포는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된 갈고리 모양의 모래 퇴적 지형이었으나, 1900년 초 일본의 어선들이 몰려들면서 어선 피난처로 각광받기 시작하였다. 거기에 어선을 수리하고 급수(給水)를 받는 포구로 이용되면서 연안 어업 기지로 건설되었다. 1916년 일본인 오자와[大澤]가 일본인 부산거류민단에서 대풍포의 매립권을 양도받아 1926년까지 바다를 매립하고 주택지를 조성함으로써 대풍포의 옛 모습은 사라지고 주변에 조선소 및 술집과 위락 공간이 조성되었다. 현재는 대평동의 끝자락에 위치해 시가지로 바뀌었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대평포는 영도구 대평동 일대에 있던 포구로, 본래는 영도에서 중구 남포동 쪽으로 뻗어 나온 큰 사주(沙洲)였다. 현재의 대평동 끝자락에 해당하며, 일제 강점기에 포구로 이용하며 매립과 개발이 이루어져 위치만 짐작하고 있다.
[관련 기록]
일본인이 쓴 『초량화집(草梁話集)』에는 대평포를 왜포라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1936년 11월 20일 발행한 「부산부 시가도」에는 대평포를 매축하면서 만든 피항(避港)을 사츠마보리[薩摩堀]라 기록하고 절영도 임시 왜관으로 추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