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37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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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草梁話集 |
영어의미역 | Record of Tales in Chorya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동철 |
[정의]
쓰시마 번의 최고위직 통역관을 역임한 오다 이쿠고로가 1796년 저술한 부산 초량 왜관 관련 안내서.
[저자]
오다 이쿠고로[小田幾五郞]는 오다 토하치로[小田藤八郞]의 외아들로 1754년 11월 28일 쓰시마 번[對馬藩]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이름은 고로하치[五郞八]다. 어릴 때부터 조선어를 배웠고, 13살 때 초량 왜관에 건너와 조선어를 공부하였다. 쓰시마에 돌아가서는 쓰시마 번 조선어 교육 기관인 한학사(韓學司)에 들어가 조선어 공부를 하였다. 1774년 쓰시마 번이 발급하는 조선어 학습 장려증인 조선사계고찰(朝鮮詞稽考札)을 받았다.
1786년 오인(五人) 통사가 되어 통역관 업무를 시작하였다. 1779년 계고(稽考) 통사, 1789년 본통사(本通事)를 거쳐 1795년 통역관 최고직인 대통사(大通事)가 되었다. 1831년 10월 22일 7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묘소는 쓰시마 이즈하라 카이안지[海岸寺]에 있다. 평생을 조선어 통역관으로 살면서, 조선과 관련된 많은 저서를 남겼다. 현재 『초량화집(草梁話集)』 외에 『상서기문(象胥紀聞)』, 『통역수작(通譯酬酢)』이 전한다.
[편찬/간행 경위]
초량 왜관을 중심으로 전개된 조선과 일본의 관계를 여러 측면에서 정리한 왜관 관련 안내서용으로 편찬하였다. 통역관인 큰아들 오다 칸사쿠[小田管作]는 물론이고 후배 통역관 등 관리들의 근무 지침서를 목적으로 편찬한 것으로 본다. 1825년 오다 이쿠고로는 『초량화집』을 쓰시마 번에 제출하였다. 이것이 쓰시마 번의 지시에 의한 것인지 본인이 스스로 결정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쓰시마 번이 지시했다면 편찬 경위는 더욱 분명해진다.
[형태/서지]
1책으로 된 필사본이다. 현재 여러 곳에 소장되어 있다. 히비야도서문화관 소장본은 세로 10.2㎝, 가로 13.1㎝의 화장본(和裝本)이다. 이 책은 원래 나카야마[中山久四郞] 소장본으로, 1952년 5월 12일 등록되어 히비야도서문화관 특별문고실에 소장되었다.
『초량화집』은 조선사편수회[현 국사편찬위원회] 소장본과 도쿄도립히비야도서관[현 히비야도서문화관] 소장본의 두 종류가 학계에 소개되었다. 타가와 고죠[田川孝三]가 인용한 조선사편수회 소장본에는 오다 이쿠고로가 1825년 편집하여 쓰시마 번 조선 업무 책임자에게 제출했다고 되어 있다. 타가와 고죠가 인용한 『초량화집』의 국사편찬위원회 소장 여부는 현재 알 수 없다. 히비야도서문화관 소장본에는 1796년 당시 오다 이쿠고로가 업무를 보는 사이사이에 들었던 것을 기록한 것을 1800년 4월 초량 왜관에서 필사했다고 되어 있다. 그러므로 『초량화집』은 오다 이쿠고로가 1796년 처음 저술한 이후 1800년 초량 왜관에서 근무할 때 필사해 두었다가, 쓰시마로 돌아가 조선어를 가르치다가 1825년 쓰시마 번에 제출한 것으로 보인다. 1989년 안언감오(安彦勘吾)가 히비야도서문화관 소장본을 원문과 함께 탈초하여 소개하였다.
오다 이쿠고로와 후손 관계에 있는 쓰시마의 오우라 모시토시[大浦望人司] 집에 1책으로 된 필사본 『초량화집』 4종이 소장되어 있다. 쓰시마 이즈하라의 쓰시마 역사 민속 자료관에도 『초량화집』 1종이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타가와 고죠가 인용한 조선사편수회 소장본과 히비야도서문화관 소장본은 항목 구성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히비야도서문화관 소장본이 조선사편수회 소장본보다 수리소(修理所) 등 세 항목이 많다. 그러나 내용은 대부분 비슷하다. 히비야도서문화관 소장본은 전체 20항목이다. 항목별로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쓰시마 사절 선박 도착 시 영접 절차, 선창의 수축과 규모
2. 왜관에서 일어난 각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체결한 정식(定式)[규정], 즉 1683년 계해약조와 1676년 금제(禁制)
3. 왜관 개시(開市)와 주변 장시의 날짜, 도중(都中)[동래 상인]의 인원수, 소상인, 개시에 참여하는 지역 주민과 물품
4. 새벽 시장인 조시(朝市)에 참여하는 지역 주민
5. 왜관에 참여하는 조선인 관리와 인원수, 특히 하급 통역관인 소통사(小通事)의 각종 직책
6. 관수가(館守家)[관수옥]를 비롯한 각종 왜관 건물과 객사 수리를 담당하는 진(鎭)의 이름과 감독관
7. 왜관에 땔감을 조달하는 탄소옥(炭小屋)[시탄소]
8. 왜관 출입문인 수문(守門)을 지키는 수문 군관의 임무와 교대
9. 초량 왜관 주변에 설치된 6개 복병(伏兵)[초소]의 위치와 관할 진(鎭), 근무자
10. 1709년 설치된 설문(設門) 근무자 인원과 주거
11. 도법(道法)에 관한 내용으로 수문(守門)으로부터의 소제(掃除) 범위, 초량 왜관에서 영선 고개나 조선인 역관 근무처까지의 노정
12. 임소(任所)에 관한 내용으로 훈도(訓導) 근무처인 성신당(誠信堂) 평면도, 성신당에 걸린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 편액, 거주하는 인원
13. 유원관(柔遠館), 통사청(通事廳)[유원당], 사령청(使令廳) 건물 평면도와 건물 유래
14. 객사 평면도, 1794년 객사 이안(移安), 동래 부사와 부산 첨사 행렬 규모, 객사 관리
15. 연대청[연향 대청] 평면도, 동래 부사의 접대 행렬
16. 사도원(沙道原), 대암(大岩), 이산곡(二山谷), 구덕산(舊德山), 대치촌(大峙村), 법천(法川), 장성(長城), 당동(堂洞), 화연외(火燃隈), 구초량촌, 암남리(暗南里) 등 초량 왜관 주변 지역
17. 목도(牧島)[절영도]의 목장, 태종대(太宗臺), 오륙도, 우암포(牛岩浦)
18. 고관(古館)[두모포 왜관]에 있는 무덤 성묘, 고관 터, 사카노시타[坂下村](초량촌)의 호수(戶數)
19. 1720년 4월 15일 습지에 위치한 초량 왜관의 수기(水氣)를 없애기 위해 준설한 일
20. 범어사(梵魚寺), 다대포(多大浦), 몰운대(沒雲臺), 해운대(海雲臺), 정묘(鄭墓), 온천 등 동래 근교 명소
[의의와 평가]
왜관, 특히 초량 왜관과 관련된 구체적인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으며, 초량 왜관과 주변 지역민과의 관계를 알 수 있는 내용, 도중 상인 인원수의 감소나 소상인층의 개시 참여 증가 등 개시 무역의 변화상 등을 알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다. 특히 일본어 통역관 훈도의 거처인 훈도가, 하급 통역관인 소통사의 거처인 유원당, 왕의 위패가 있는 초량 객사, 일본 사절을 접대하는 연향 대청 등 건물의 평면도가 상세하게 그려져 있어, 초량 왜관 관련 건물 구조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한일 교류사는 물론 지역사 관점에서 초량 왜관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일급 사료로서 그 자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