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34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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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盆浦 |
영어음역 | Bun-po |
이칭/별칭 | 사분개,갯번덕 |
분야 | 지리/인문 지리,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지명/고지명 |
지역 |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동 석포 마을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한정훈 |
[정의]
근대 이전에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동 일대의 염전이 있던 갯가를 가리키는 지명.
[개설]
오늘날의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동 석포(石浦) 마을 일대의 옛 지명이다. 조선 시대 지금의 부경대학교 대연캠퍼스 남쪽 바닷가는 넓은 갯벌에 바닷물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였으므로 제염을 하기에 적당하였다. 그래서 이곳에 네 군데의 염전이 위치하였지만 바다의 자연 매립으로 현재 LG 아파트가 들어서 있는 부산광역시 남구 용호동으로 옮겨 1960년 초까지 그 전통이 이어졌다고 한다.
[명칭 유래]
분포(盆浦)는 네 군데의 소금을 굽는 동이[盆]가 있는 갯가[浦]라는 의미에서 유래하였다. 분포를 사분개라고도 하였는데, 분개는 소금 굽는 염전이 바닷물을 담을 수 있는 넓은 그릇 모양으로 널려 있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또한 이 일대를 옛날에는 ‘갯번덕’이라고 불렀다. 갯번덕이란 명칭이 어디에서 왔는지 확실한 근거를 제시하기는 어렵지만, ‘개[浦]’에 ‘언덕’이 붙어서 개언덕이 되었고 여기에 사이시옷[ㅅ]이 첨가되어 ‘갯언덕’이 되었고 갯언덕이 발음하기 쉽도록 ‘갯번덕’으로 정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형성 및 변천]
분포는 염분(鹽盆)[바닷물을 가마솥에 붓고 끓여 소금을 만드는 방법]이 조성되어 있던 장소이다. 하천을 낀 포구이던 지금의 부경대학교 대연캠퍼스 남쪽 바닷가는 넓은 갯벌에 바닷물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므로 천일제염을 하기에 적당하였다. 그래서 이곳에 네 군데의 염전이 생겨났다. 『동래부지(東萊邑誌)』』[1740]에서 남촌면(南村面) 분포리(盆浦里)는 동래부의 관문에서 약 11㎞[28리]의 거리에 있다는 기록으로 확인된다. 일제 강점기에도 이 지역은 염전으로 유명하였는데,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재정 통계 년보』[1909]에 연간 소금 생산량이 22만 6520㎏으로 집계되어 있다.
1940년 부경대학교 대연캠퍼스가 들어서면서 분포에 급속한 변화가 나타난다. 대연 캠퍼스가 들어서기 이전까지 이 지역은 갯번덕 또는 용소(龍沼) 해수욕장이라고 불렀다. 이곳에는 약 6만 6115.70㎡[252만 평]의 소나무가 우거진 솔밭과 잔디밭이 있었고, 백사장은 폭 20m, 길이 200m 정도의 해수욕장에 푸른 잔디밭이 넓게 펼쳐져 있었으나 매립되었다.
1950년 6·25 전쟁 이후에도 대연동 석포 마을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잔디밭과 백사장이 있었으며, 사분개[소금을 만드는 염전으로 현 대천초등학교 주변]도 있었다. 이후 1963년에 염전이 매립되어 동국제강이 들어섰으며, 2001년 동국제강이 이전한 이후 LG 메트로시티가 건설되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분포는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동 석포 마을 일대로 비정된다.
[관련 기록]
『동국지도(東國地圖)』 3 「동래부 지도(東萊府地圖)」[18세기 중엽], 『여지도(輿地圖)』 「동래부 지도」[18세기], 『영남 읍지(嶺南邑誌)』 「동래부 지도」[1871], 「1872 군현 지도 동래부 지도(1872郡縣地圖釜山鎭地圖)」, 「동래 부산 고지도(東萊釜山古地圖)」[19세기 후반], 「동래부 읍지 동래부 지도(東萊府邑誌東萊府地圖)」[1899] 등 대부분의 고지도(古地圖)에서 분포라는 지명이 석포 부근에서 확인되고 있다.
이렇게 고지도에서 분포의 존재가 확인되는 데 비해, 읍지(邑誌) 등의 지리지에서는 잘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영남 읍지』 권20책, 동래부[1895] 등에서 남촌(南村)[현 부산광역시 남구와 수영구]에 염분 31좌(坐)가 있다는 정도의 기록만이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