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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리 후동 청도 김씨 종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2926
한자 三聖里後洞淸道金氏宗家
영어의미역 Cheongdo Gimssi clan's Main House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후동길 46-29[삼성리 421-2]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현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가옥
양식 팔작지붕
정면칸수 4칸
소유자 김정기
관리자 김정기
건립 시기/일시 1929년 1월 12일연표보기 - 건립
현 소재지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후동길 46-29[삼성리 421-2]
원소재지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후동길 46-29[삼성리 421-2]

[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삼성리 후동 마을에 있는 일제 강점기의 청도 김씨 적산공파 종가.

[개설]

기장의 청도 김씨는 임진왜란 이후인 1618년(광해군 10) 기장 향교 건립에 힘을 쓴 팔가(八家) 13인 중의 한 문중이다. 1400년대 초반에 기장군 일광면 삼성리 후동 마을에 입향하여 600여 년이나 된 오랜 역사를 가진 문중이다.

[위치]

삼성리 후동 청도 김씨 종가후동 마을로 들어가는 초입에서 다리 아래로 들어가면 있다.

[변천]

적산공파 김연석(金鍊碩)이 1400년대 전반기에 후동 마을에 들어와 토담 가옥을 건축하였다. 이후 자연재해로 개축하였으며, 현재의 건물은 1929년 1월 12일에 지은 것이다. 행랑채는 1930년대 후반에 지어졌다.

[형태]

대지 약 5,940㎡에 안채[99㎡]와 행랑채[66㎡]로 구성되어 있다. 뒤쪽은 예전에 묏자리였으나 1944년 기장군 장안읍삼각산으로 이장하였다. 안채 구조는 팔작지붕의 목조 와가로 지은 전형적인 한옥으로 목재는 기장군 철마면 등지에서 옮겨왔다. 이 건물을 지을 때 좀을 방지하기 위하여 구덩이에 현미를 몇 가마[1가마=80㎏] 부어 불을 붙이고, 그 불에 목재를 훈재하였다고 한다. 기장군 기장읍 신천리의 목수가 쇠못 등은 전혀 사용하지 않고 나무와 흙, 돌로만 지었다.

일(一)자식으로 정면 4칸이다. 정면에서 보았을 때 오른쪽에 방이 상하로 2개 있고, 왼쪽에 방과 주방이 있다. 문살뿐만 아니라 문도 전통 방식대로 접이식도 되고 위로 들리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아궁이는 정면에 위치하고 있다.

삼성리 후동 청도 김씨 종가 내에는 고소리[술 빚는 기구], 떡돌, 옹기, 시루 등 전통 가구들이 많이 있으며, 지하 저온 창고도 마련되어 있다. 종가 앞에는 수령 350년 된 모과나무가 있고, 대문 곁에는 150여 년 된 감나무가 있다. 종가 뒤에는 수령 200~250여 년 된 엄나무가 있으며, 종가 왼쪽으로는 대나무 숲이 있다. 대나무 숲에는 수령 300~400년 된 팽나무가 두 그루 있으며, 수령이 100년이 넘는 희귀종인 백일홍과 청실 배나무가 있다.

[현황]

현재 삼성리 후동 청도 김씨 종가가 있는 후동 마을은 택지 개발에 직면해 있다. 후동 마을에는 가옥이 거의 남아 있지 않으며 그나마도 아파트로 바뀔 운명에 처해 있다. 이곳은 임진왜란 이후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집단 와요지(瓦窯址) 7기가 발견되고 주변은 적송과 쌍바위골이 감싸고 있어 온화함이 느껴지는 마을이다. 이 후동 마을을 민속촌으로 지정하여 전통의 맥을 보존하는 것도 뜻 깊은 일일 것이다. 또 종가의 건축 방법과 종가 내에 보존된 민속품은 민속촌으로서의 가치를 더욱 높일 것이다. 이에 32세손 김병규(金炳圭)[1939년생]가 홀로 소송을 통해 종가를 지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2013년 현재 33세손 김정기와 그의 아들, 그리고 모친이 거주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부산에서 보기 드물게 현존하는 종가로, 건축사적으로도 매우 의미 있는 가옥이다.

[참고문헌]
  • 『일광면지』(일광면지편찬위원회, 2006)
  • 인터뷰(청도 김씨 적산공파 32세손 김병규, 2013. 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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