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28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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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建築 |
영어의미역 | Architecture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홍순연 |
[정의]
부산에서 근대 이후에 형성된 건축의 역사.
[개설]
부산의 건축은 조선 시대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 극명한 차이가 나타난다. 조선 시대 이전의 경우 동래를 중심으로 형성된 읍성에 주요 건축물이 집약되어 있었다면 조선 시대 이후인 일제 강점기 시대부터는 동래를 벗어나 초량 왜관-거류민단으로 전환된 지금의 중구, 동구, 서구 등 원도심인 부산이라는 지역을 중심으로 주요 건축물의 중심지로 부각되었다.
특히 부산의 건축은 사회적, 정치적 변화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며 본 내용에서는 전근대 시기의 건축과 서양의 근대 건축이 도입된 이후로 시기를 구분하고, 다시 후자를 개항 이후에서 광복까지의 건축물을 1단계 근대 건축의 도입기로 구성하였다. 그리고 광복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 본격적인 도시화 및 근대 건축이 확립된 시기를 2단계 근대 건축의 형성기로 정의하였다. 또한 3단계는 지역 건축의 형성기로서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의 시기로 현대 건축과 지역 문화에 관심이 높은 지역 건축가 중심의 건축이 진행된 시기로 정리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외환 위기 이후인 199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는 4단계로 구분하여 현대 건축의 국제화·대중화의 시기로 지역 건축의 진행기로 구분하여 정리하였다.
[근대 건축의 도입기]
1. 개항기~1910년대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 초량 왜관 부근이 일본인들에 의해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개항 이후 초량 왜관은 일본인 거류지가 되면서 서양풍 건축 양식의 많은 건축물이 일본을 통해 유입되었다. 1894년의 부산 일본 제국 전관 거류지 지소 대도 규칙(專管居留地地所貸渡規則)에 의해 일본인 거류지는 매매 및 양도가 가능하여 일본식 건물과 서양풍 건축들이 자유롭게 축조되었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목조를 비롯하여 벽돌, 유리, 시멘트, 철강 등의 건축용 자재 등도 함께 유입되었다. 당시 서양풍 건축들은 관공서, 은행 역사 등으로 공공성의 성격이 강한 건축물이 많이 지어졌으며 특히 관공서 건축물은 외교 기관인 동시에 거류민을 보호 및 관리하던 관리 관청들이었다.
처음 지어진 관리 관청은 옛 초량 왜관 당시 관수왜가(館守倭家) 자리에 세워진 일본인 관리 관청[1879년]으로 2층 목조 건물로 전면 베란다를 두어 조망이 가능한 건축물이었다. 이후 관리 관청은 영사관[1880년], 이사청[1906년]으로 변하게 되었다. 그 외 부산경찰서[1905년], 부산저금관리소[1905년], 부산지방법원[1908년], 헌병분대[1910년], 부산세관[1910년], 부산우편국[1910년], 조선총독부 수역혈청제조소[1911년], 체신국 부산해사출장소[1912년], 경상남도 산업장려관[1914년] 등이 건립되었다. 당시 건축물은 대부분 르네상스식의 고전주의 양식을 채용하였으나 일부 건축물은 일본식과 서양식이 절충된 화양 절충 양식으로 건립되었다. 이러한 관공서 및 공공 기관의 경우 구조는 목조, 벽돌조로 구성되었다.
또한 당시 무역항이었던 부산은 많은 금융 기관이 진출하면서 은행 건축물도 건립되었다. 대표적인 은행 건물로는 십팔은행 부산지점[1897년], 제일은행 부산지점[1910년], 조선은행 부산지점[1910년], 한성은행 부산지점[1918년] 등으로 조적(組積) 건축물에 고전주의 양식과 추상적인 선과 곡선을 가미한 아르 누보(art nouveau) 스타일과 간결하고 단순한 선적 요소를 가미한 세제션(secession) 스타일 등 다양한 건축 양식을 표현하였다.
더불어 근대 교통수단인 철도가 개통되면서 식민지 지배뿐만 아니라 경제 활동에 변화를 가져왔다. 철도 역사는 도시 계획의 중요한 거점 시설이다. 특히 부산역은 부산 여객선 부두와 연계하여 1910년 3월에 준공하였다. 부산역 후방의 5개 선로를 끌어내어 여객선과 열차를 이용하는 승객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부산역은 철골조 2층 건물로서 목조 평지붕의 건물 각 두 동씩 건설되어 대합실, 식당, 우체국과 교환소, 화물 검사장 등으로 구성되어 운송과 물류의 중심 역할을 담당하였다. 따라서 1910년대 전후의 건축물은 대부분 정치, 경제, 물류 등의 도시 기반을 형성하는 건축물을 건립함으로서 근대 건축의 준비기로 볼 수 있다.
2. 1920년대~1930년대
반면 1920년대 이후 부산은 전관 거류지 중심의 도시화에서 벗어나 지금의 부산광역시 서구, 동구, 진구, 영도구 등으로 도시가 확장되는 시기이다. 주요 건축물도 관공서, 은행, 학교, 상업 건축 등 다양한 건축물이 들어서게 되었다. 공공 건축물 또한 식민지 지배를 위한 시설물이 계획되었으며 주요 건축물에는 부산수상경찰서[1920년], 부산형무소[1923년], 경상남도 청사[1925년], 경상남도 도지사 관사[1926년] 등이었다.
그리고 일본인 교육뿐만 아니라 조선인의 교육을 위한 시설인 부민공립보통학교[1921년], 삼도실업여학교[1922년], 부산제1공립상업학교[1923년], 부산공립중학교[1925년] 등이 건립되었다. 또한 1920년대 이후는 경제적 기반 아래 일본인의 자본이 유입됨에 따라 부산무진주식회사[9121년], 부산상업은행[1922년], 조선상업은행 부산지점[1922년], 동양척식주식회사[1929년] 등이 건립되었다. 이들 건축물은 벽돌조, 목조, 철근 콘크리트조 등 건축물 유형 및 성격에 따라 구조도 다양하게 나타나는 시기였다.
3. 1930년대 이후
1930년대 이후는 군사 및 공업화에 따라 화풍 양식에서 벗어나 장식을 배제하고 내부적 기능을 강조한 합리주의 건축물이 나타났다. 이에 따라 구조 또한 대부분이 철근 콘크리트조로 구성되었다. 부산의 대표적인 합리주의 건축은 부산상공회의소[1930년], 부산부 청사[1934년], 부산측우소[1934년], 부산세무소[1934년], 영도 대교[1934년], 구 남선전기주식회사[1936년], 소화장 아파트, 청풍장 아파트[1944년] 등으로 이 시기의 건축물을 계기로 근대 건축물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현재 부산에는 광복 이전의 근대 건축물이 약 300여 채가 남아 있으며 그중 일부가 보존 가치를 인정받아 시도 지정 문화재 4건, 등록 문화재 9건[총 11개], 부산 근대 건조물 4건[총 6건]으로 등록되어 있다.
[근대 건축의 형성기]
1. 1950년대
다양한 근대 건축 유형을 받아들인 부산은 해방 이후 새로운 근대 건축의 형성기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특히 1950년대는 한국인 건축가들이 발돋움한 시기로서 근대 건축을 우리 기술과 경제력으로 실천한 시기이다. 대표적인 건축인 부산대학교 인문관[1953년] 건축물은 근대 건축의 거장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이론을 바탕으로 건립되었으며 이천승의 경남고등학교 덕형관[1956년]은 한국 스타일의 근대 건축으로 현재 등록 문화재로 지정될 예정이다. 그리고 제일제당 공장[1958년]은 한국 최초의 대규모 근대적 제조 시설을 건립함으로써 근대 산업 건축의 대표적 건축물로 자리매김하였다.
2. 1960년대
이후 1963년 직할시로 승격되는 행정적 변화로 부산의 중심 도로 체계와 화재로 인해 피해를 입은 부산역에서 조방 앞까지의 간선 도로변의 택지 구획 정리에 따라 근대적인 대규모의 건축물이 들어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당시 대규모 건축물은 현상 설계에 의해 시도되었으며 대표적인 건축물이 바로 부산 시민 회관[1963년]이다. 또한 현 부산역사의 기본 안이 1963년에 선정되었으며 동방 빌딩[1966년] 등 근대 건축에 조형성을 가미한 디자인이 등장하였다. 그 외 미국식 건축을 부산에 소개하는 계기를 마련한 침례병원[1968년], 새로운 주거 개념인 현 부산광역시 중구 신창동 시영 아파트[1962년], 부산 건축가에 의해 재해석되어 건립된 부산진 시장[1970년]이 들어서게 되었다.
3. 1970년대
1970년대는 수영 아파트[1974년]와 같은 대규모 아파트 건립이 진행되었고 용두산 공원 부산 타워[1974년], 어린이 대공원[1974년], 국제 호텔[1977년], 크라운 관광호텔[1979년], 제일은행 범일지점[1979년] 등 기념비적인 건축물과 기능적이며 장식을 배제하고 구조적 미를 강조한 국제주의를 바탕으로 한 근대 건축이 건립되어 도시 건축을 확립하였다.
4. 건축 활동 단체
또한 부산 건축계에서도 체계적인 건축 활동을 위한 단체인 건축가협회 부산지부[1962년], 대한건축사협회 부산지부[1965년]가 창립되었다. 그리고 1975년 부산 미술 대전에 건축 부문이 생겨 신인 건축가들의 등용문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건축가협회 부산지부는 초대 김택진 회장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부산 건축 대전, 건축 도시 사진전, 신인 건축가상 등 부산의 건축 교류 및 건축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또한 대한건축사협회 부산지부는 건축사 실적 관리, 건설 기술자 등의 경력 관리를 진행하고 있으며 지역의 건축 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하여 1997년 전국 최초로 건축사 신문을 발간하였으며 2008년에는 도시디자인연구원을 개설하여 지역의 도시 미관과 어메니티(amenity) 사업을 진행하여 건축사들의 사회적 참여를 촉진하고 있다.
[지역 건축의 형성기]
1. 1980년대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 건축계는 대규모 건축물과 현상 설계에 의한 새로운 건축가의 등단 시기였다. 부산 또한 광역 교통망의 건설로 인해 지하철, 고가 도로, 터널 등 새로운 교통수단이 개통함에 따라 도심뿐만 아니라 도심의 외곽 지역까지도 개발이 진행되었다.
이에 따라 부산 건축도 양과 질을 발전시켜 부산 문화 회관[1980년], 부산광역시 여성회관[1980년], 부산광역시립시민도서관[1982년], 부산시 충혼탑[1983년] 등 상징성이 강조된 건축물과 더불어 1980년대 중반 이후 학교 및 연구 시설인 동아대학교 교수회관[1983년], 부산교육대학교 체육관[1984년], 부산예술고등학교[1984년], 동의공업전문대학[1984년], 동의대학교 학생회관[1986년], 한국해양대학교 체육관[1986년] 등 많은 건축물이 들어서게 되었다. 특히 1985년에 공모된 부산상공회의소의 경우 정면의 옥상 파라펫(parapet)에 박공을 설치한 디자인으로 근대 건축에서 탈피한 포스트모던 건축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2. 1990년대 전반
그리고 1980년대 후반기부터 시작된 부동산 경기의 과열에 힘입어 오피스텔이 대단위로 건립되었으며 대표적인 건축물에는 눌원 빌딩[1990년], 비전 빌딩[1990년], 국제 오피스텔[1990년], 센츄리 오피스텔[1991년], 크리스탈 비치 오피스텔[1991년] 등이 있다. 이러한 대규모 건축이 부산에 들어섬에 따라 건축 기술도 대규모 시설을 수용할 수 있는 구조, 설비, 외장 기술이 발달하였다.
이들 대부분의 건축물들은 부산을 거점으로 운영되는 지역의 건축사 사무소에서 진행되었으며 이 과정을 통해 설계 사무소의 대형화와 기술 축적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또한 건축 유형도 부산 지역에 적합한 조형과 기능을 설계 기준으로 설정하여서 새로운 부산 건축의 정체성을 모색하여 부산 건축의 지역성을 이끌어 내는 계기가 되었다.
[지역 건축의 진행기]
1997년 IMF 구제 금융에 따라 한국 건축계 전반이 침체기를 맞게 되었다. 이에 따라 부산의 건축계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나타났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부산의 건축 문화의 국제적 경쟁력 확보를 위한 단체별 건축 활동이 집중화되었다. 특히 국제 현상 설계 공모 및 부산다운 건축상[2002년]을 선정함으로써 부산 건축의 정체성과 차별성을 가지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또한 2000년에는 부산 국제 건축 문화제 조직이 창립되면서 부산의 건축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현재까지 이루어지고 있으며 부산 시민들에게 부산의 건축 문화를 알리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지역 건축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진 이 시기의 주요 건축물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대규모 공공시설인 구청사, 문화 회관, 도서관 등이 건립되었으며 그 대표적인 건축물은 부산광역시 청사[1998년], 부산문화방송 사옥[1998년], 동래 문화 회관[1999년], 부산 민주 공원[1999년], 기장군 청사[2000년], 부산 전시 컨벤션 센터[2001년], 부산 아시안 게임 주 경기장[2001년], 부산역사[2004년], 부산디자인센터[현 부산디자인진흥원][2006년] 등이 있다. 또한 대규모 상업 시설인 부산 롯데 월드[1997년], 스위스 건축가 마리오보타가 설계한 교보생명 부산 사옥[1999년], 새로운 관람 시설인 부산 아쿠아리움[2001년] 등이 들어서게 되었다. 또한 주거 시설도 해운대 지역을 중심으로 대규모 형태로 변모하여 40층, 50층대의 초고층 주거시설이 건립되기 시작하였다.
이와 더불어 낙후된 주거 지역을 중심으로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시작되어 부산의 주거 개발에 집중되는 경향도 나타났다. 재개발·재건축 사업은 초기 부산 전 지역에 걸쳐 주택 재개발 사업, 주택 재건축 사업, 주거 환경 개선 사업, 도시 환경 정비 사업 등으로 나뉘어 진행되었으나 2010년 이후 재개발·재건축에 이은 원주민의 재 정착률이 현저히 떨어지고 사업성이 저하됨에 따라 현재는 사업을 축소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를 대신하여 부산에서는 행복 마을 만들기, 도시 활력 마을 만들기, 희망 마을 만들기 사업 등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는 기존 철거 및 전면 재개발 등 획일적인 공간 재생 방식에서 벗어나 사회, 문화적 가치를 보존하고 개발하기 위한 사업으로 2013년 현재 총 59개 지역에 사업이 진행 중에 있다.
그리고 부산의 대표적 도시 공간인 산복 도로를 중심으로 산복 도로 르네상스 사업을 진행하여 현재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중구 영주동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2014년에는 금정산 일원, 수정산 일원, 황령산 일원, 봉래산 일원으로 확산되어 진행될 예정이다. 산복 도로 르네상스 사업은 한국 근대사의 역사적 산물인 산복 도로 지역을 중심으로 부산의 서민 밀집 지역인 원도심 지역 재생 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 외 재개발 및 전면 철거에 따른 기존 커뮤니티 해체 등으로 도시 정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공공 부문의 물리적 재생에서 벗어나 주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여 인문, 사회적 측면에서 마을 재생을 위한 커뮤니티 뉴딜 정책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방법은 기존의 개발 방식에서 벗어나 지역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도시 재생 측면을 강조하고 있으며 부산 속에 다양한 주거지 재생 사업을 통해 부산만이 가진 지역적 특징을 반영한 건축 활동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부산 건축은 초기 서양 건축을 받아들여 근대 건축으로 발전시키는 동시에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지역적 건축화 작업, 다양한 건축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영화의 전당[2012년]이 개관하였으며 앞으로 북항 재개발, 부산 시민 공원, 송상현 광장, 오페라 하우스 등의 대규모 사업과 지역의 정체성과 어메니티를 살린 소규모 건축이 균형감 있게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