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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2884
한자 寫眞
영어의미역 Photography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이상수

[정의]

부산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80년 사진 예술 활동의 변천과 발달 과정.

[개설]

부산 지역의 사진은 한국 사진사의 전개와 마찬가지로 일제 강점기의 식민지 경험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부산 사진의 시작은 확실하게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서울에서 사진관을 개설한 김용원이 1880년 경상남도 수영의 우후로 재직할 때 부산에서 연구한 사진술과, 또는 부산의 일인 거류지에서 사진관을 개업한 사람들에게서 배운 사진술을 전파한 것이 부산 사진의 출발점으로 여겨진다. 또한 부산이 개항지였기 때문에 초창기에는 이곳을 중심으로 사진 활동이 시작되었으리라 본다. 기록에 의하면 1917년 창선동 1가에 토비 사진관이 있었고, 남포동 2가에 팔교 사진관, 그리고 남포동에 산기 사진기점과 부평동에 오산 사진기점, 암뢰 재료상 등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부산 사진의 도입과 정착]

1. 초창기 기록 사진[1930년대~1945년]

부산 사진계는 1931년 일본인이 중심이 되어 활동을 벌였던 ‘부산여광사진구락부’ 에 유일한 한국인으로 임응식(林應植)[1912~2001]이 들어가고, 1937년 일본의 동경사진학교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정인성(鄭寅星)이 가입하면서 부산 사진의 여명기는 시작되었다. 당시에는 각종 공모전의 전형이었던 자연 관조적 풍경 사진인 살롱 사진이 지배적인 경향을 이루었다. 임응식정인성 등은 국제 사진 살롱과 사진 단체의 활동으로 꾸준히 부산 사진을 이끌어 갔다. 또한 1933년 7월 동경사진학교를 졸업한 조상범은 1938년 8월 동경 오리엔탈 사진 강습회를 마치고 귀국하였다. 명광사를 구입하여 부산에 정착하며 영업 사진에 전념하였던 조상범은 각종 사진전에 작품을 출품하여 많은 수상 기록을 가지고 있다.

해방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부산에 역사적 사건과 현장감 넘치는 순간을 기록으로 남기는 기록 사진가들이 등장한다. 김정석은 부산 일보사에서 임시 기자증을 받아 프리랜서 기자의 자격으로 신문사에서 요구하는 기록성 위주의 사진들을 찍기 시작했다. 특정한 입장을 드러내지 않고 현장을 찍은 김정석의 사진은 부산 기록 사진의 효시라 할 만하다. 부산의 초창기 기록 사진은 예술을 표방하는 일부 사진가들이 간과했던 사진의 기계적 특성을 최대한 활용했다. 당시 김정석 외에도 박기동과 이병삼이 프리랜서 사진 기자로 활동하긴 했지만 이와 관련된 기록이나 사진 자료는 전하지 않고 있다.

2. 전기 리얼리즘 사진: 생활주의 리얼리즘[1946년~1960년대 초반]

1946년 임응식의 주도로 창립한 ‘부산광화회’는 부산의 사진 단체 활동의 서막을 알리면서 김정석, 박기동, 이병삼, 허종배 등 회원 15명이 참여한 창립전을 열었다. 부산광화회는 부산에서 한국인 주도로 만든 최초의 아마추어 사진가 단체로서 의미가 있지만, 1947년에 ‘부산예술사진연구회’로 이름을 바꾸고 ‘생활주의 리얼리즘’ 사진 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더 큰 의의가 있다.

한국 사진계에서 부산 사진이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게 된 것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도 관련 있지만, 무엇보다 리얼리즘 사진에 대한 요청을 운동의 차원으로까지 끌어올린 ‘생활주의 리얼리즘’의 영향을 간과할 수 없다. 하지만 현실의 기록이란 가치에 주목했기 때문에 부산 사진사는 물론 한국 사진사에서 하나의 중심축을 형성할 수 있었다. 부산예술사진연구회의 창립 전시회는 1947년 11월 부산 미국 공보원에서 열었으며, 1948년 12월 제2회 전시회가 국제 신문사 3층 전시실에서 개최되었다.

1951년 6·25 전쟁으로 수도가 부산으로 옮겨지면서 부산 지역 작가들과 타 지역 작가들이 자연적으로 교류하였다. 부산예술사진연구회는 부산 구포에서 대한사진예술가협회와 촬영회를 마련하였고, 1951년 12월 21일부터 27일까지 합동 통신사 후원으로 대도회 다방에서 7일간 사진 동인전을 개최하였다. 이때 부산, 서울, 삼천포 등의 작가들과 교류하게 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행사를 바탕으로 사진작가들의 뜻이 모아져 자연적으로 ‘한국사진작가협회’가 탄생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부산 사진이 정착하는 데 한국사진작가협회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다. 한국사진작가협회는 1952년 11월 부산에서 전국 규모의 협회로는 처음 창립되었다. 한국사진작가협회는 전쟁으로 부산에 거주하던 몇몇 동인들이 구상하던 사진 단체를 각 지방 작가와 협의하여 작품·작화주의를 슬로건으로 내세워 국내의 문화 부문과의 교류와 한국 문화 건설에 기여하여 후배를 양성하고자 만들어진 단체였다. 한국사진작가협회는 현일영을 초대 회장으로 전국에 37명의 회원이 모여 결성하였는데, 그 가운데 부산 출신이 가장 많았고, 초대 지부장에는 정인성이 추대되었다. 1952년 12월 12일 남포동의 국제구락부 화랑에서 일주일간 제1회 창립전을 가졌다. 이 단체는 5·16 쿠데타로 해산되었다.

이렇듯 부산에서 사진작가들의 활약이 활발한 것은 한편으로 사진 교육이 체계적으로 시작되었던 점도 영향이 크다. 1953년 부산에 피난 와 있던 서울대학교 예술대학의 미술학부에서 필수 과목으로 사진 강의가 시작되었고, 당시 부산 사진의 거두인 임응식이 강의를 맡았다. 이후 1957년 부산대학교, 1965년 한성여자실업초급대학[현 경성대학교], 1966년 동아대학교에서 사진학이 개설되었다.

1961년 12월 17일 오늘날의 사단 법인 한국사진작가협회의 모태가 된 ‘한국사진협회’ 창립 발기인 대회를 국립 중앙 공보관에서 열어 본격적인 활동을 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한국사진협회의 각 지방 산하 단체인 한국사진협회 경남지부가 결성되었다. 이는 한국사진작가협회의 경남지부장인 김광석과 대한직업사진가협회[1955년 창립] 단체장인 김재문이 협의하여 1961년 12월 17일 창립총회를 개최하여 설립한 것이다. 지부장에 김재문, 부지부장에 김광석·임효도 등이 활동하였다. 한국사진협회 경남지부는 1962년 2월 22일 ‘한국사진작가협회 부산지부’로 새롭게 인준되었다. 1964년 8월 4일에는 임응식의 주도로 ‘한국창작사진협회’가 만들어져, 리얼리즘에 입각한 사진 창작을 주장하면서 공모전 중심의 살롱 사진을 추구하는 한국사진작가협회에 저항하고자 했다.

이와 같이 한국사진작가협회와 한국창작사진협회는 한국 사단의 양대 산맥으로서 이해와 대립적인 관계로 이어 왔다. 1963년 창설된 동아 사진 콘테스트가 표방하는 사진이 리얼리즘 계열이었다면, 1964년 개설된 대한민국 미술 전람회 사진부는 살롱 사진 계열이 주를 이루었다. 이러한 상황이 부산 사진계에 끼친 영향은 매우 크다. 당시는 사진가가 되기 위해서 공모전에 입상을 하고 한국사진작가협회의 회원이 되는 것을 당연한 절차로 여겼기 때문이다.

[부산 사진의 심화]

1. 후기 리얼리즘 사진[1960년대 중반]

전기 리얼리즘 사진의 영향이 1960~1970년대까지 꾸준히 이어져 리얼리즘 사진이 다양화되는 경향을 띤다. 이는 1967년 최민식의 주도로 조직된 ‘청사회’의 영향이 컸다. 정인성을 고문으로 두고 김복만, 김석만, 배동준, 이준무, 정광삼, 정영모, 정정회 등 많은 부산의 사진가들이 청사회 회원으로 활동했다. 각종 공모전에서 탁월한 성적을 냈던 청사회는 리얼리즘 사진이 전성기를 구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며 점차 전국적으로 주목을 끌었다. 청사회는 회원들 간의 사진 품평회와 회원전을 통하여 부산 사진의 맥을 이어온 리얼리즘 사진이 다양화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 사회적 모순에 대한 문제의식이 심화되었던 한국 사진의 일반적인 경향과 달리 부산의 리얼리즘 사진은 인간의 모습과 삶의 풍경에 천착하는 경향이 있었다. 배동준의 사진은 일반적인 리얼리즘 사진과 달리 힘이 들어가지 않은 따뜻한 느낌을 자아내었다. 안정되고 차분한 배동준의 사진은 회화적 풍경 속에 인물을 삽입하거나 빛을 탁월하게 활용하는 등의 장치를 통해 구성적 리얼리즘을 추구하고 있다.

이 시기 대표적인 작가로는 정정회, 정영모, 김석모 등을 들 수 있다. 그 가운데 정영모는 부친 정인성에게 직접 사진을 배우고, 다양한 사진을 접하면서 쌓은 그의 개인적 감각이 기반이 되었다. 특히 정영모의 사진은 순간으로 포착된 화면 안에서 피사체들이 잘 어울리는 데 중점을 두기 때문에, 그 특정 부분을 관심 대상으로 부각시키는 힘이 있다. 그것은 정영모[혹은 우리]의 시각에 의해 지각되면서 이미지로 실재하는 현실을 보여 주었다.

2. 조형 실험 사진의 등장[1960년대 후반]

1960년대 후반부터 초창기 리얼리즘 사진이 다양하게 해석되고 심화되는 중에 다른 한편에서는 리얼리즘의 전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움직임도 등장했다. 리얼리즘사진이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던 부산의 사진계로서는 매우 신선한 충격이었지만, 그 당시는 사진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러한 조형 실험 사진은 살롱 사진과는 구별되는 변화를 형식적인 실험을 통해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했다. 조형 실험 사진은 1960년대 말에 등장했지만, 리얼리즘 사진을 찍으면서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구성과 형태에 대한 고민을 했던 많은 사진가로부터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이렇게 새로운 사진에 대한 갈망으로 생겨난 구성 중심의 조형 실험 사진은 ‘부산일요사진회’[1968]를 중심으로 확장되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박기동, 박하원, 송봉운, 최부길 등이었다. 박기동은 같은 세대는 아니지만 이들과 비슷한 경향의 태도를 보이므로 그의 사진을 조형 실험 사진의 출발점으로 잡았다. 박하원은 정인성에서 김광석으로 이어지는 리얼리즘 사진의 계보에 있는데, 그의 화면은 사진 속 대상들이 저마다 제자리에 놓여 있는 것처럼 절제된 구성으로 대상을 극렬하게 보여 주는 대신, 삶의 풍경 속에 적절하게 놓여 있는 인물과 동물을 포착했다. 송봉운은 부산일요사진회의 초기 회원으로, 리얼리즘 사진에서 출발하여 점차 조형적 풍경 사진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 준다. 최부길은 부산일요사진회 활동을 중심으로 조형 실험 사진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는 특히 기존의 사진과 차별화되는 사진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형식 실험을 시도했다.

3. 포토저널리즘[1970년대]

김정석으로부터 시작된 부산의 기록 사진의 계보는 1960년대 중반 『부산 일보』의 정식 사진 기자가 된 정광삼으로 이어진다. 정광삼은 신문사의 시스템 내에서 뉴스를 위한 사진을 찍었는데, 이것이 부산의 포토저널리즘의 시작이다. 그의 사진들은 객관적 기록으로서의 사진에서 신문사의 관점과 입장이 드러나는 사진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보여 준다. 이에 비해 허구는 경찰 출신으로 사진 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채 자료와 사료 중심의 기록 사진인 공적 다큐멘트 작업을 하였다. 『국제 신문』의 김탁돈과 『부산 일보』의 이상일은 정광삼과 허구에 이어 포토저널리즘의 기틀을 잡았다.

부산 사진이 심화되는 이 시기에는 리얼리즘 사진이 개인의 개성이 드러나는 방식으로 다양화되면서 사진 자체의 표현 방식이 바뀌는 데 영향을 준다. 아쉬운 점은 부산에서 이러한 적극적인 사진 활동이 있었음에도 이 작업들을 제대로 분석하거나 비평할 담론의 토대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부산 사진의 변화 모색]

1. 심상 사진과 영상 사진[1980년대]

1980년대 대학 교육의 도입으로 부산 사진은 제도적 차원에서 변화를 맞이했다. 자신의 작업 의미를 자기 안에서 찾는 작가 정신이 발현되기 시작하는 시기로, 작품의 정당성을 자신의 감수성과 의식이 드러나는 작품 내부에서 찾았다. 이런 측면에서 1980년대 부산 사진의 한 경향으로 개인의 내면적 풍경을 대상과 등가를 이루도록 표현하는 심상 사진과 사진 매체의 특성에 주목하여 사진이 그 자체로 메시지를 전달하도록 만드는 영상 사진을 위치시킬 수 있다.

부산의 심상 사진은 조형 실험 사진과 마찬가지로 리얼리즘 사진과 연결된다. 정귀순의 사진 작업은 리얼리즘 사진에서 심상 사진으로의 변화 과정으로 읽어낼 수 있다. 이경순은 대학원에서 순수 사진을 전공하였는데, 불교를 통해 얻은 화두를 다양한 관점으로 풀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2. 사진가에서 사진작가로[1980년대]

대학에서 사진 교육을 받은 새로운 세대는 사진 매체가 다른 매체와 구분되는 특성에 주목한다. 그들은 현실을 기록하거나 상황의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말하는 영상 언어로서의 사진을 통해 전통적인 사진의 경향과 단절한다. 최경헌은 디자인 전공 출신답게 디자인적 요소와 사진적 특징이 결합하는 양상을 보여 준다. 이순남은 빛과 오브제를 이용해 사진 구성에 개입하여 만드는 사진[making photo]을 추구했다. 손묵광의 사진은 사람과 풍경을 조형적으로 구성하는 사진에서 ‘있는 그대로의’ 사물 자체를 담아내는 사진으로, 그 다음은 오브제를 놓고 조형성을 극대화하는 사진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 준다. 장영화는 아카이브로서의 가치보다 대상의 물질성을 드러내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부산 사진의 새로운 물결]

1. 매체의 혼용과 일상성[1990년대]

1990년대 사진은 더 이상 사진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시각 문화에서 활용된다. 특히 김홍희와 문진우는 1999년 부산 최초의 사진 전문 갤러리인 ‘포토 갤러리 051’을 열면서 여러 전시를 기획하는 등 부산 사진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자 했다. 정봉채는 조형적 풍경 사진의 전통을 이으며 동양의 자연관을 사진에 담았다. 이희섭은 사진을 통해 현실을 고발하는 운동가로서 작업한다.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한 김석중[아타김]도 이 시기 부산에서 새로운 세대로 활동한 바 있다. 특별한 순간으로서의 한 장면이 아니라 일상의 지속적인 존재에서 주어지는 순간을 사진으로 나타낸다. 그리고 일상성을 모티프로 미술계에서 사진 매체를 활용하여 작업하는 김경덕, 이순행이 있다.

2. 디지털 시대의 부산 사진[2000년대]

매체의 확장과 동시에 사진 미학의 확장이 이루어진다. 사진에 개념적, 기술적 상상력이 도입되는 것이다.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낯설면서도 친숙한’ 방식으로 보여 주는 사타, 8×10 대형 카메라로 도시 공간을 즉물적으로 담아내면서 매체의 확장을 보여 주는 화덕헌, 디지털 매체의 힘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사진의 본질에 접근하는 에어리어 박[박진영], ‘~되기’ 를 통해 차이와 차별, 중심과 주변의 문제를 드러내는 배찬효, 삶과 환경의 변화에 주목하여 유목성과 비전을 제시하는 송성진 등이 대표적 작가이다. 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이 속한 세계를 통해 정체성을 드러내는 작업을 하는데, 디지털 사진의 등장으로 사진 매체 역시 스스로 정체성을 물어야 하는 상황과 연결되어 다양한 담론이 만들어질 수 있을 듯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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