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11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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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山底- |
영어의미역 | Sanjeo Village |
이칭/별칭 | 산밑 마을,도화촌(桃花村)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 산저 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정형 |
성격 | 자연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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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740년 - 동래부 서면 산저리에 편입 |
변천 시기/일시 | 1914년 - 경상남도 동래군 동래면 온천동 |
변천 시기/일시 | 1942년 - 경상남도 동래군 동래면 온천동에서 경상남도 부산부 동래출장소 온천정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49년 - 경상남도 부산부 동래출장소 온천정에서 경상남도 부산시 동래출장소 온천동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57년 - 경상남도 부산시 동래출장소 온천동에서 경상남도 부산시 동래구 온천동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59년 - 행정동인 온천 2동에 편입 |
변천 시기/일시 | 1963년 - 경상남도 부산시 동래구 온천동에서 부산직할시 동래구 온천동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95년 - 부산직할시 동래구 온천동에서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으로 개편 |
자연 마을 | 산저 마을 -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 산저 마을 |
[정의]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에 있었던 자연 마을.
[명칭 유래]
금정산 자락에 있다 하여 산저(山底) 또는 산밑 마을이라고 한 것 같다. 또한 돌복숭아가 많이 재배되어 도화촌(桃花村)이라 부르기도 했다고 전한다.
[형성 및 변천]
산저 마을이 언제 형성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동래부지(東萊府誌)』[1740] ‘각면 각리 원근정도조(各面各里遠近程道條)’에 “산저리는 읍내면의 서쪽에 있는 서면에 속하고, 관문에서 5리 거리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동래부읍지(東萊府邑誌)』[1899]에까지 계속 산저리로 기록되다가 『경상남도 동래군 가호안』[1904]에는 서상면 화촌리(華村里)로 기록되었는데, 당시 이 동네의 호수는 36호였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금산동, 미남동, 화촌동, 북면의 소정동 일부와 함께 합쳐져 경상남도 동래군 동래면 온천동에 편입되었다. 1942년 10월 경상남도 부산부 동래출장소 온천정이 되었다가 1949년 8월에는 경상남도 부산시 동래출장소 온천동으로 개편되었다. 1957년 1월 경상남도 부산시 동래구 온천동이 되었다. 1959년 2월 행정동을 온천 1동과 온천 2동으로 나눌 때 온천 2동에 편입되었다. 1963년 1월 부산직할시 동래구 온천동이 되었다. 1979년 1월 행정동인 온천 2동을 온천 2동·온천 3동으로 나눌 때 온천 2동에 편입되었고, 1995년 1월 부산직할시가 부산광역시로 승격하면서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 산저 마을이 되었다.
[자연 환경]
산저 마을의 서쪽에는 금정산이 있고, 동쪽으로는 완경사의 사면이 있다.
[현황]
산저 마을은 금정산 자락의 사회 복지 법인인 새들원에서 산저 교차로 사이에 있었던 자연 마을이다. 현재는 고급 주택과 빌라, 고급 음식점 등의 건물들이 밀집되어 있어 옛 마을의 흔적은 찾기 어려우나, 산저 교차로가 있어 위치를 짐작하게 한다. 동쪽에는 우장춘로, 서쪽 가까이엔 구만덕로, 남쪽에는 충렬 대로와 부산 도시 철도 3·4호선 미남역 등과 각각 연결되어 교통이 편리하며, 가까운 거리에 롯데 백화점 동래점, 롯데 마트, 동래 온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