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10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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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蓮洞-龜浦洞- |
영어의미역 | Yeondong Village[Gupo-dong]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 연동 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표용수 |
[정의]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에 있었던 자연 마을.
[명칭 유래]
연동 마을[구포동]은 연등개[連(土+登)] 나루 부근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양산군지(梁山郡誌)』[1899]에 “만덕계수(萬德溪水)[만덕천]와 대리천 물이 유입되는 감동진 입구에 주민들이 보를 쌓았다고 하며 이를 사동포(沙同浦)라 한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곳의 샛강 양편에 모랫둑을 쌓아 모래 언덕을 연결한 나루를 연등개 나루로 불렀고, 이 연등개가 변음하여 연동이 되었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연동 마을의 형성 시기는 명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지만, 마을이 구포 시장과 접해 있고, 샛강을 연결하는 나루터가 있었던 것으로 볼 때 구포장과 관련한 마을로 추정할 수 있다. 마을이 속한 지역은 1906년 경상남도 양산군 좌이면에서 동래군 좌이면으로 개편되었다가 1910년 부산부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동래군 구포면 구포리가 되었다. 1930년대 낙동강 제방 공사 때 구포 다리를 가설하고 구포 나루터에서 경부선 굴다리가 있는 곳까지 둑을 쌓았다. 또한 구포장이 시장 마을 쪽으로 이설되며 연둥개 나루에서 구포 시장으로 들어오는 곳에 대리 제방과 연결하여 둑을 쌓고 수문을 설치하였다.
일제 강점기 마을 내에 구포면사무소[경부선 철도 변]가 있었고,구포 장터 3·1 만세 운동 시위 당시 면사무소를 거쳐간 현장이기도 하다. 이후 마을이 속한 지역은 1943년 동래군 구포읍에 속하였다가 1963년 부산직할시에 편입되어 부산진구 구포출장소 관할이 되었다. 1978년 2월 구포출장소가 북구로 승격하였다. 1979년 8월 구포동이 구포 1동, 구포 2동으로 분동하였고, 1994년 7월 구포 1동이 구포 1동, 구포 3동으로 분동하였다. 1995년 부산직할시가 부산광역시로 승격하면서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 연동 마을이 되었다.
[자연 환경]
연동 마을은 낙동강 동편에 있던 마을로, 마을 북쪽에서 대리천이 낙동강으로 유입한다.
[현황]
연동 마을은 구포 1동 주민자치센터 북쪽에서 구포 시장 사이 경부선 철도 건널목 부근까지 걸쳐 있던 자연 마을로, 경부선 철도가 마을을 가로지르고 도로가 건설되며 모습은 많이 사라졌으나 주변 골목에 옛 흔적을 남기고 있다. 경부선 철도 옆 차도와 옛 골목길, 구포 철도 건널목을 넘어 시랑으로 들어가는 중앙 도로는 옛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마을의 동북쪽에 구포 시장이 있고, 서쪽에는 경부선 철도가, 북서쪽으로는 낙동 대로가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