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08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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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神理敎大新町布敎所 |
영어의미역 | Daesinjeong Mission Work Station of Siligyo |
분야 | 종교/신종교,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서구 대신동|중구 보수동 1가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배병욱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광역시 서구 대신동과 중구 보수동 1가에 있었던 신리교 소속 교당.
[설립 목적]
일본 바쿠후[幕府] 말기부터 출현하기 시작한 습합 신도, 즉 ‘신종교(新宗敎)’는 봉건 체제 붕괴에 따른 사회 혼란과 근대화 프로젝트의 부작용 등을 파고들어 신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음으로써 단기간에 발전을 이루었다. 신리교(神理敎) 역시 그 중 하나로, 1880년 후쿠오카현[福岡縣] 출신의 사노 쯔네히코[佐野經彦]가 무부신도(巫部神道)를 모태로 창시하였다. 제신은 『고사기(古事記)』에 나오는 천지어중주신(天之御中主神)과 천조대신(天照大臣) 등 18주신(柱神)을 봉재주신(奉齋主神)으로 하고 일상적으로는 그 신들을 천재제신(天在諸神)으로 총칭하였다. 1882년 일본 정부 포고령에 따라 국가신도(國家神道)에서 분리된 13개 교파 신도(敎派神道) 중 하나가 되었으며, 조선 개항 이후 일본의 타 신종교와 함께 일제의 비호를 받으며 식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조선에 진출하여 그 교세를 확장하고자 하였다.
[변천]
신리교 대신정포교소(神理敎大新町布敎所)는 1918년 11월 부산부 대신정 238번지[현재의 부산광역시 서구 대신동]에서 설립되었으며, 1934년 10월 12일 보수정 1정목[현 부산광역시 중구 보수동 1가]으로 이전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종교 의례와 포교가 그 주된 활동이었으며, 봄과 가을에 대제(大祭)를 개최하였다. 부산부의 조사에 따르면 1934년 신도 호수는 일본인 56호, 1936년의 신도 수는 일본인 81명이었다. 이를 통해 주로 일본인을 대상으로 종교 활동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현황]
신리교를 포함한 일본의 신종교는 해방과 동시에 한반도에서 철수하여, 그 명맥이 끊어졌다.
[의의와 평가]
메이지기 이래 신리교 등 일본의 신종교는 천황제 근대 국가를 지지했고, 본국을 넘어 식민지에서까지 통합 이데올로기로 활용됐다. 이들에 대한 현황 파악을 통해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의 일제의 문화적 침투의 양상을 알 수 있어, 향토사 연구에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