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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교 우덕원도하교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0808
한자 扶桑敎祐德院稻荷敎會
영어의미역 Udeokwondoha Church of Busanggyo
분야 종교/신종교,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중구 부평동 4가 8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배병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종교 시설
설립자 기가이 우사[鬼海ウサ]
설립 시기/일시 1931년 11월 30일연표보기 - 설립
해체 시기/일시 1935년 6월 24일 - 포교소 폐지계 인가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30년 6월 14일~ 1931년 9월 20일 - 부상교 우덕포교소
최초 설립지 부상교 우덕원도하교회 - 부산광역시 중구 부평동 4가 8[구 부산부 부평정 4정목 8]지도보기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광역시 중구 부평동 4가에 있었던 부상교 소속 교당.

[설립 목적]

일본 바쿠후[幕府] 말기부터 출현하기 시작한 습합 신도, 즉 ‘신종교(新宗敎)’는 봉건 체제 붕괴에 따른 사회 혼란과 근대화 프로젝트의 부작용 등을 파고들어 신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음으로써 단기간에 발전을 이루었다. 부상교(扶桑敎)[후쇼교] 역시 그 중 하나로, 1873년 시시노 나카바[宍野半]에 의해 후지 신앙을 기반으로 조직되었다. 1882년 일본 정부 포고령에 따라 국가 신도(國家神道)에서 분리된 13개 교파 신도(敎派神道) 중 하나가 되었으며, 조선 개항 이후 일본의 타 신종교와 함께 일제의 비호를 받으며 식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조선에 진출하여 그 교세를 확장하고자 하였다.

[변천]

부상교 우덕원도하교회(扶桑敎祐德院稻荷敎會)는 1931년 11월 30일 부산부 부평정 4정목 8번지[현재의 부산광역시 중구 부평동 4가] 에서 설립되었다. 그 이전 1930년 6월 14일 부평정 2정목에 부상교 우덕포교소(扶桑敎祐德布敎所)가 설립되어 포교에 종사하다가 1931년 9월 20일 1년 만에 폐지되었는데, 이는 우덕원도하교회의 전신으로 추정된다. 우덕원도하교회의 포교 담임자로 선정된 기가이 우사[鬼海ウサ]가 1931년 12월 11일 부평정 2정목에서 4정목으로 이주하는 등 인적 연관성이 보이기 때문이다. 1935년 6월 24일 포교소 폐지계가 인가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종교 의례와 포교가 그 주된 활동이었다. 부산부의 조사에 따르면 1932년·1933년 당시 신도 호수는 일본인 80호였다. 이를 통해 주로 일본인을 대상으로 종교 활동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현황]

과거 부상교 우덕원도하교회가 위치했던 부산광역시 중구 부평동 4가 8번지 일대는 현재 주택가와 상가 등으로 변모해 있는데, 일부 일식 가옥이 남아 있어 일제 강점기 당시의 옛 모습을 그려볼 수는 있으나 포교소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의의와 평가]

메이지기 이래 부상교 등 일본의 신종교는 천황제 근대 국가를 지지했으며, 본국을 넘어 식민지에서까지 통합 이데올로기로 활용되었다. 이들에 대한 현황 파악을 통해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의 일제의 문화적 침투의 양상을 알 수 있어, 향토사 연구에 도움이 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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