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08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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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扶桑敎釜山敎會所 |
영어의미역 | Busan Church of Busanggyo |
분야 | 종교/신종교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중구 부평동 2가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배병욱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광역시 중구 부평동과 영도구 영선동에 있었던 부상교 소속 교당.
[설립 목적]
일본 바쿠후[幕府] 말기부터 출현하기 시작한 습합 신도, 즉 ‘신종교(新宗敎)’는 봉건 체제 붕괴에 따른 사회 혼란과 근대화 프로젝트의 부작용 등을 파고들어 신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음으로써 단기간에 발전을 이루었다. 부상교(扶桑敎)[후쇼교] 역시 그 중 하나로, 1873년 시시노 나카바[宍野半]에 의해 후지 신앙을 기반으로 조직되었다. 1882년 일본 정부 포고령에 따라 국가 신도(國家神道)에서 분리된 13개 교파 신도(敎派神道) 중 하나가 되었으며, 조선 개항 이후 일본의 타 신종교와 함께 일제의 비호를 받으며 식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조선에 진출하여 그 교세를 확장하고자 하였다.
[변천]
부상교 부산교회소(扶桑敎釜山敎會所)는 1916년 2월 부산부 부평정 2정목[현재의 부산광역시 중구 부평동 2가]에서 설립되었다. 1929년 8월 27일 부산부 영선정 2022번지[현재의 부산광역시 영도구 영선동]에도 교회소 설립이 인가되었으나, 1931년 9월 20일 영선정의 교회소는 부평정 2정목의 교회소와 통합되었다. 또 같은 해 10월 6일에는 예전 영선정의 교회소 대표자 구본관치(久本寬治)가 통합된 부산교회소의 포교 담임자로 인가를 받았다. 1933년 10월 19일에는 교회소의 소재지가 부평정 2정목에서 영선정 2022번지로 다시 변경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종교 의례와 포교가 그 주된 활동이었다. 부산부의 조사에 따르면 1932년·1933년 신도 호수는 일본인 250호였고, 1934년 신도 호수는 일본인 260호였다. 그리고 1936년 신도 수는 일본인 255명이었다. 이를 통해 주로 일본인을 대상으로 종교 활동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현황]
부상교를 포함한 일본의 신종교는 해방과 동시에 한반도에서 철수하여, 그 명맥이 끊어졌다.
[의의와 평가]
메이지기 이래 부상교 등 일본의 신종교는 천황제 근대 국가를 지지했으며, 본국을 넘어 식민지에서까지 통합 이데올로기로 활용되었다. 이들에 대한 현황 파악을 통해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의 일제의 문화적 침투의 양상을 알 수 있어, 향토사 연구에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