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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0774
한자 -後期聖徒敎會
영어공식명칭 The Church of Jesus Christ of Latter-day Saints in Busan
이칭/별칭 말일성도예수그리스도교회,몰몬교
분야 종교/신종교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탁지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교회
설립자 김호직
홈페이지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http://www.lds.or.kr)
설립 시기/일시 1952년 8월 3일연표보기 - 말일성도예수그리스도교회 설립
개칭 시기/일시 2005년 7월 1일연표보기 - 말일성도예수그리스도교회에서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로 개칭
최초 설립지 말일성도예수그리스도교회 - 부산역 공회당 및 제1부두
현 소재지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 부산교구 - 부산광역시 동래구 우장춘로 59번길 2[온천동 1039-1]지도보기
현 소재지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 부산서교구 - 부산광역시 서구 보수대로 258번길 8[동대신동 3가95-7]지도보기

[정의]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에 있는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 소속 교회.

[개설]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몰몬교]는 1830년 4월 6일 미국 뉴욕주 페이엇(Fayete)에서 조셉 스미스(Joseph Smith)[1805~1844]가 설립한 교회이다. 이후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는 오하이오주와 미주리주를 거쳐 현재의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Salt Lake City)에 자리를 잡았다. 조셉 스미스는 1844년 6월 27일 반대자들에 의해 살해되었지만, 브리감 영(Brigham Young)[1801~1877]을 비롯한 그의 후계자들에게 계승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공식 영문 명칭은 ‘The Church of Jesus Christ of Latter-day Saints’이며, 한국에서는 초기에 ‘말일성도예수그리스도교회’라는 명칭을 사용했으나, 명칭에서 나타나는 종말론적인 부정적 이미지를 전환하기 위하여 2005년 7월 1일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로 공식 명칭을 변경하였다.

[설립 목적]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는 선교 사업, 죽은 자를 구속함, 성도를 온전하게 함을 교회의 사명으로 하여 설립되었다.

[변천]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는 6·25 전쟁 당시 미군을 통해 피난지 부산에서 포교가 처음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부산역전 공회당에서 『몰몬경』 공부가 진행되었으며, 점차 한국인들이 참여하게 되었다. 공회당이 화재로 없어지게 되자, 이후 제1 부두에서 모임을 지속하게 된다. 6·25 전쟁이 끝난 후 대부분이 서울로 돌아갔으나, 10여 명의 교인들이 부산에 남아 미군 부대 도서실 등의 시설에서 계속 모이게 된다.

1951년 미국 코넬대학교에서 유학 중이던 김호직 박사가 침례를 받고 귀국하여 부산에서 집회를 가지면서 본격적인 한국 포교가 시작되었다. 김호직은 문교부 차관[1955~1956]을 지냈으며,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가 한국에 정착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1952년 8월 3일 김호직의 가족들은 부산 송도에서 한국 최초로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 침례를 받았다. 6·25 전쟁 혼란기에 부산과 대구 등지에서 영어 교육과 함께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 모임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6·25 전쟁 당시 참전했던 미군들을 통하여 부산에서 최초로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의 한국 포교가 시작된다. 6·25 전쟁의 마지막 피난처였던 부산으로 온 피난민들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현재에 대한 불안감 속에 살고 있었고, 이들에게 새로운 종교적 가르침은 효과적으로 자리 잡게 된다. 한국의 대표적인 기독교계 신흥 종교 운동인 통일교가 시작한 곳도 바로 피난지 부산이었다. 6·25 전쟁은 미국의 대표적인 신흥 종교 운동인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가 자연스럽게 한국에 정착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

6·25 전쟁 종전 직후, 1955년 8월 2일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 지도자가 한국을 방문한 것을 계기로 일본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 선교부에서 한국에 선교사를 파견해 한국 지방부를 조직하였다. 김호직이 초대 지방 부장으로 임명받았고, 이후 많은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 선교사들이 한국에 왔으며, 1962년에는 한국 선교부가 조직되었다. 1967년 3월에는 한국어판 『몰몬경』이 출간되었고, 1970년에는 한국어판 『찬송가』가 출간되었다. 1973년 3월 8일 한국 최초의 서울스테이크가 조직되었고, 1985년 12월 14일 아시아 최초의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 성전이 서대문구 신촌에 건립되었다.

[현황]

미국 내에서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는 소수 종교가 아니다. 현재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 신자인 미트 롬니가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할 정도로 미국 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많은 신도수를 가지고 있다. 또한 천주교, 남침례교, 오순절교회 등과 함께 미국에서 가장 급성장하는 종교 단체로 알려져 있다. 현재 한국에서는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 선교사들의 영어 교육을 통해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부산은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의 첫 모임과 포교 활동이 이루어진 장소이다. 한국의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 전래는 6·25 전쟁 기간 중 미군에 의하여 부산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확장되어졌다. 부산에는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 소속의 ‘부산교구’[광안교회, 수정교회, 연산교회, 온천교회, 금정교회, 해운대교회]와 ‘부산서교구’[괴정교회, 구포교회, 대신교회, 영도교회]가 조직되어 있다. 부산은 국내외 기독교 신흥 종교 운동들의 주요한 발흥지가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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