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0631 |
---|---|
영어의미역 | Siranggol Village |
이칭/별칭 | 시랑곡(侍郞谷) 마을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 시랑골 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표용수 |
[정의]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에 있었던 자연 마을.
[명칭 유래]
시랑골이란 이름은 가락국의 시랑(侍郞) 벼슬하던 사람이 나라가 망하자 마을 입구 폭포 언덕 위에 정자를 짓고 멀리 김해의 분산(盆山) 쪽을 쳐다보면서 지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시랑골 부근에 있어 시랑골[侍郞谷] 마을이라고 불렀다.
[형성 및 변천]
시랑골 마을은 가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명칭 유래로 볼 때 거주가 시작된 시기는 이른 것으로 추정되지만, 1970년대까지만 해도 가옥 10여 채만 있는 산골 마을이라 뚜렷한 마을의 형성 시기는 확인할 수 없다. 마을이 속한 지역은 1906년 경상남도 양산군 좌이면에서 동래군 좌이면으로 개편되었다. 1910년 부산부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동래군 구포면 구포리가 되었다.
1943년 구포면이 구포읍으로 승격되어 동래군 구포읍에 속하였다가, 1963년 부산직할시에 편입되어 부산진구 구포출장소 구포동이 되었다, 1978년 2월 구포출장소가 북구로 승격되었다. 1979년 8월 구포동이 구포 1동, 구포 2동으로 분동되었고, 1994년 7월 구포 1동이 구포 1동, 구포 3동으로 분동되었다. 1995년 부산직할시가 부산광역시로 승격하면서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 시랑골 마을이 되었다.
[자연 환경]
시랑골 마을은 구포의 주산인 주지산[백양산의 봉우리] 능선 아래에 있으며, 북쪽으로 말등 고개가 있고, 북서쪽 낙동강변 쪽으로 범방산이 울타리처럼 둘러서 있어 예로부터 명당 터로 알려져 있었다. 마을의 동쪽 주지산에는 금샘터가 있고, 금샘 옆의 너덜 지대에는 구들돌[한옥의 전통적인 온돌방의 구들장]이 많이 생산되어 1960년대까지 부산 시내로 공급되었다. 금샘에서 발원한 물은 금수사 아래쪽에서 시랑골 폭포를 이루고 다시 아래로 흘러 정샘이 폭포, 참샘이 폭포, 소당 폭포 등 많은 폭포를 이루며 흘러가 대리천을 이루며 북서쪽으로 흘러 낙동강에 합류한다.
[현황]
시랑골 마을은 북구 구포 3동 산48번지에 있던 산골 마을로, 현재는 도시화로 주택지와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며 시가지가 되어 옛 흔적을 찾을 수 없다. 현재 이 지역에는 부산과학기술대학교 성도고등학교, 삼정정보고등학교, 포천초등학교, 신천초등학교 등이 있고, 골목길에 시랑로와 모분재로라는 이름이 붙여져 그 위치를 짐작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