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05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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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死守釜山映畵人蹶起大會 |
영어의미역 | Busan Filmmakers’ Rally to Protect Screen Quotas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병학 |
[정의]
1999년 부산광역시 부산역 광장에서 부산 영화인들이 스크린 쿼터제를 사수하기 위해 전개한 궐기 대회.
[역사적 배경]
당시 스크린 쿼터 축소를 둘러싸고 정부와 영화계가 마찰을 빚고 있었는데, 정부가 한미 투자 협정 타결과 관련해 146일로 돼 있는 스크린 쿼터를 2002년부터 40일에서 60일로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정부는 스크린 쿼터는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양보되어야 한다고 하고, 영화계는 스크린 쿼터 없이 국가의 미래는 없다고 맞섰다. 이에 1999년 6월 24일 오후 3시 부산역 광장에서 스크린 쿼터 사수 부산 영화인 비상대책위원회[공동 위원장은 주윤탁 부산영화평론가협회장 등 3명]는 ‘스크린 쿼터 사수 부산 영화인 궐기 대회’를 개최하였다. 부산젊은영화인모임과 부산영화평론가협회 등에 속한 영화인들이 참여하였다.
[경과]
이날 영화배우 박중훈, 이혜은과 한국영화인협회 부산 지회, 동녘필름, 시민 단체 회원 등 200여 명이 참가해 정부의 한국 영화 의무 상영 일수[스크린 쿼터]의 축소 방침 철회를 촉구하였다. 이들은 ‘부산 시민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정부가 현재 연간 146일인 한국 영화의 스크린 쿼터를 미국의 압력과 한미 투자 협정의 타결을 위해 60~80일로 축소할 경우 국내 영화 산업이 무너지고 문화 주권을 상실하게 된다”고 하며 스크린 쿼터제의 현행 유지를 요구하였다.
또한 김사겸, 오석근, 곽경택 감독 등 영화인 10여 명이 정부의 스크린 쿼터 축소 방침에 항의해 삭발하였다. 부산 지역 30여 개 시민 단체로 구성된 ‘우리영화지키기 부산시민사회단체 공동대책위원회’도 성명서를 내고 “미국 상품 불매 운동과 미국 영화 안 보기 운동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부산 국제 영화제로 한국 영화의 위상을 높인 부산 영화인들의 행동은 스크린 쿼터 사수 투쟁에 더욱 힘을 실어주었다.
[결과]
스크린 쿼터 사수 부산 영화인 궐기 대회는 이후 전국적인 운동으로 확대되었는데, 그 속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였던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 2003년 9월 19일 스크린쿼터문화연대는 미국의 하버드대학 학생 41명이 한국의 스크린 쿼터제를 지지하는 성명을 보내왔다고 밝혔다. 이들 하버드생들은 ‘미디어와 폭력’, ‘지구화와 문화’ 등의 수업에서 스크린쿼터문화연대가 제작한 「노래로 태양을 쏘다」를 보고 이 같은 지지 의사를 밝히게 됐다고 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할리우드의 독점적 배급 방식에 대항해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영상 분야의 문화 다양성 운동에 참여하고자 한다. 영화는 단순한 상품이 아닌 의사소통과 문화적 교류를 위한 매우 중요한 수단이다. 세계 각국은 그들의 문화적 매체를 보호할 다양한 방식[보조금, 세제 혜택, 방송 쿼터, 스크린 쿼터 등]을 지원할 수 있는 권한을 유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1999년 조재홍 감독이 연출한 「노래로 태양을 쏘다」는 1998년 6월부터 1년간 한국 영화인들이 할리우드 영화의 독점에 맞서 삭발, 단식 투쟁을 하며 문화 주권을 지키고자 한 노력을 밀착 기록한 다큐멘터리로, 2000년 11월 제20회 하와이 영화제에 공식 초청되면서 미국에 입성하였다.
[의의와 평가]
정부의 스크린 쿼터 축소 방침에 대한 영화인들의 반발 투쟁은 1999년에 이어 2006년에도 전개되었다. 그러나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가령, 영화 스태프들의 처우 문제 등을 지적하며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곧 『오마이 뉴스』 2006년 2월 3일자 기사인 「왜 한국 국민이 우리 영화인 말 안 믿나」에 딸린 댓글에서 “고작 몇 십만 원 받고 일하는 스태프들은 생각해 봤나?”라며 영화인들의 반발 투쟁을 지적했으며, “스크린 쿼터 사수 궐기 대회에 참여한 메이저 영화사 배우나 감독이 국내에서 독립 영화나 저예산 영화를 지원하려고 노력한 흔적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결국 그들만의 투쟁, 밥그릇 지키기 투쟁으로만 보이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스크린 쿼터를 사사하자는 영화인들은 ‘문화 다양성’을 부르짖었다. 그래서 유네스코의 ‘문화 다양성 협약’에 뜨거운 지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국내적으로도 지켜져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으며, 할리우드의 ‘승자 독식주의’와 ‘빈부 양극화’ 법칙이 국제적으로 막아야 할 적(敵)이라면, 그 법칙은 국내에서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영화 문화의 생존을 위한 스크린 쿼터 사수 부산 영화인들의 주장은 분명 영화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미국은 세계 영화 산업의 90%를 장악하고 있으며, 한국 영화에 스크린 쿼터로 내준 40%를 뺀 60%를 독식하고 있다. 이미 많이 먹고 있는데 더 먹겠다는 것이다. 거식증 환자가 아니라, 독식증 환자의 횡포라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많은 논쟁이 그렇지만, 스크린 쿼터 논쟁도 이른바 ‘빙산의 일각’ 현상이라는 것이다. 물 위로 드러난 건 스크린 쿼터지만, 물밑엔 스크린 쿼터와 연결된 다양한 거대 의제들이 버티고 있다.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보호주의, 자유 무역 협정, 한미 관계, 국익, 문화 정체성, 영화 철학, 사회적 형평성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문제들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에 스크린 쿼터가 불씨를 지폈다는 데 의의가 있으며 영화의 도시 부산이 그 시발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