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03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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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韓民報 |
영어의미역 | Sinhan Minbo |
이칭/별칭 | 『신한 일보』 |
분야 | 문화·교육/언론·출판 |
유형 | 문헌/연속 간행물 |
지역 |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동 1가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보영 |
[정의]
해방 후 부산에서 창간하여 발행한 우익계 신문.
[창간 경위]
일제의 식민 통치에서 벗어나자 한국 사회는 식민지의 모순을 청산하고 새로운 독립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시대적 과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 과제를 둘러싸고 정치적·이념적 지향을 달리하는 여러 정당과 단체들이 생겨나면서, 그동안 억눌렸던 각종 주의·주장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각종 매체를 동원하여 목소리를 담아냈다. 먼저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은 좌익계 언론들이었고, 이에 맞서 우익계 언론들도 신문을 발행하여 자신들의 주장을 펼쳤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한 민보(新韓民報)』는 해방 후의 혼란기에 부산의 우익계 대표 신문으로 창간되었다. 김억조를 발행인으로 하여 1945년 11월 2일 대청동 1가 24번지에서 창간되었다.
[형태]
판형은 타블로이드판[가로 39.3㎝, 세로 54.5㎝]이며 발행 면수는 두 면이다. 지면은 당시로서는 드문 가로쓰기로 편집하였다.
[구성/내용]
당시 이승만 박사 지지를 표방할 만큼 내용이나 구성에서 우익 성향의 논조들이 중심을 이루었다.
[변천과 현황]
정확한 창간 일자가 알려지지는 않고 있지만 『신한 일보』가 창간된 것도 『신한 민보』가 창간된 1945년 후반 무렵인 것으로 추정된다. 제호가 다르지만 부산에서 창간된 신문이라는 사실과 창간 발행인이 김억조(金億祚)로 되어 있는 점만 봐도, 『신한 일보』와 『신한 민보』가 동일한 신문일 가능성이 높다. 또는 『신한 민보』로 창간하였다가 『신한 일보』로 개제하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946년 4월 9일에 경상남도 경찰부는 부산의 좌익 계열 각 정당과 사회단체와 언론에 대한 검거와 압수를 단행하였다. 이 때 대상이 된 신문을 『민주 중보』와 『인민 해방보』, 『대중 신문』, 『신한 일보』의 네 신문으로 서류와 장부 등을 압수당하였다. 이러한 조치에 대해 당국은 “각 신문사가 미군정을 신임치 않으며 방해하는 계획이 있기 때문에 그 파괴적 기록을 수사하기 위해서 검색을 한 결과 불법 행위가 있었음이 발각된 때문”이라고 발표하였다. 하지만 극우 성향을 가진 『신한 일보』가 왜 이때 검거와 압수의 대상이 되었는지는 불확실하다. 폐간일은 정확히 언제인지 확인이 안 되지만, 폐간되었다가 1947년 3월 28일부터 박경영(朴敬英)이 『조선 신문』으로 제호를 바꾸어 발행하였다.
[의의와 평가]
당시 거의 모든 신문에서 세로쓰기 편집이 일반적이었는데, 『신한 민보』는 가로쓰기 편집을 채택하여 다른 신문과의 차별화를 시도하였다는 점이 특기할 만한 사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