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02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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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衆新聞 |
영어의미역 | The Daejung Sinmun |
분야 | 문화·교육/언론·출판 |
유형 | 문헌/연속 간행물 |
지역 | 부산광역시 중구 동광동 3가 26|대청동 1가 35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보영 |
[정의]
해방 이후 부산 지역에서 창간되었던 좌익 성향의 신문.
[창간 경위]
일제의 식민 통치에서 벗어나자 한국 사회는 식민지의 모순을 청산하고 새로운 독립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시대적 과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제를 둘러싸고 정치적·이념적 지향을 달리하는 여러 정당과 단체들이 생겨나면서, 그동안 억눌렸던 각종 주의·주장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여러 정당과 단체들은 각종 매체를 동원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맥락에서 부산에서도 좌익 성향의 신문들이 창간되었는데, 그 대표적 신문이 『대중 신문(大衆新聞)』이다. 『대중 신문』은 동래 출신의 박일형(朴日馨)과 의사 김동산(金東山)이 1945년 12월 5일 부산광역시 중구 동광동 3가 26번지에서 창간하였다.
[형태]
판형은 타블로이드판[39.3㎝×54.5㎝]이며 발행 면수는 2면이다.
[구성/내용]
『대중 신문』의 내용은 좌익 성향의 논조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변천과 현황]
1947년 10월에 좌익지인 『인민 해방보(人民解放報)』가 폐간된 뒤 그 독자들을 흡수하여 사세가 활발하였으나, 발행인 김동산과 편집국장 박일형이 좌익으로 규정되어 군정의 간섭이 심해짐에 따라, 1947년부터 홍보영(洪甫容), 이재현(李在賢) 등이 운영권을 인수하여 중립지로 발행되었다. 그러나 운영난을 해소하지 못해 정간(停刊)에 들어가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48년 1월, 일제 때 『매일 신보(每日新報)』 경상남도 지사장을 지낸 이수우(李壽雨)와 박문희(朴文熹), 김달범(金達範) 등이 운영권을 인수하여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동 1가 35번지의 구 곡물 취인소 건물로 이전하여 속간(續刊)하였다. 속간 후 실업가 김지태(金智泰)의 외삼촌인 이수우는 김지태의 재정 지원으로 운영을 개선하여 노력하다가 1949년 10월 1일, 김지태가 인수한 『부산 일보(釜山日報)』에 합병되었다.
[의의와 평가]
1947년 10월에 부산의 대표적 좌익지였던 『인민 해방보』가 폐간되면서 『대중 신문』이 많은 독자를 흡수하였다. 이에 따라 중립지인 『민주 중보』나 우익지인 『자유 민보(自由民報)』가 많은 영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