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00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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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東萊老婆 |
영어의미역 | Old Woman in Dongnae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양리 |
[정의]
1652년 조선 후기의 문인 허목이 동래 노파에 대하여 기록한 전.
[개설]
「동래 노파」는 허목(許穆)[1595~1682]이 지은 『미수기언(眉叟記言)』 제22권 원집(原集) 중편에 수록되어 있다. 연보에 따르면 허목은 1652년(효종 3) 6월 경상도의 낙동강 우안(右岸)[오른쪽 기슭]의 세 절행(絶行)에 대한 전(傳)을 창작하였다고 한다. 바로 효자 문계달(文繼達)과 권을(權乙), 동래 할미[東萊嫗] 등 모두 선행(善行)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동래 노파」는 이들 중에서 동래 할미의 절행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구성]
「동래 노파」는 도입부, 전개부, 결말부, 논찬부(論贊部) 등으로 이루어지는 전의 일반적인 구성을 따르고 있으며 분량은 길지 않다. 도입부에서 동래 노파의 인물 정보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전개부에는 동래 노파의 일생을 효행을 중심으로 전하고 있으며, 결말부에서는 그녀가 어머니를 봉양하다 80여 세에 죽었음을 밝히고, 마지막 논찬부에서는 동래 노파에 대해 허목이 느낀 바를 서술하고 있다.
[내용]
동래 노파의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동래 노파는 본래 동래의 사창(私娼)이었다. 1592년(선조 25)에 30여 세의 몸으로 왜구에게 잡혀갔다가 1606년(선조 39) 사행(使行) 편에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노파에게는 늙은 어미가 있었는데 고국으로 돌아와서야 어미도 왜구에게 잡혀갔음을 알게 되었다. 이에 노파는 다시 왜국으로 건너가 전국을 헤매어 결국 어미를 찾을 수 있었다. 이 소식이 일본 안에 퍼지자 동래 노파를 어미와 함께 송환시켜 주었다. 고향으로 돌아온 노파는 어미와 언니와 함께 함안(咸安) 방목리(放牧里)에서 살았는데, 구걸을 하며 어미를 극진히 봉양하였다. 어미가 천수를 다하자 자매가 의지하여 살았다. 노파는 80여 세에 죽었는데 사람들이 모두 동래 노파라 불렀다. 허목은 논찬부에서 동래 노파에 대해 여자의 몸으로 모녀가 만리타국에서 다시 만난 것은 하늘이 도운 일이며, 남자도 하지 못할 절행으로 오랑캐를 감화시켰으니 어질다고 평가하였다.
[특징]
임진왜란과 관련된 충신·효자·열녀에 관한 전은 왜란 직후부터 시작하여 꾸준히 창작되었다. 그중에서 「동래 노파」는 동래의 사창이라는 천한 신분의 여성이 보여준 효행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의의와 평가]
부산의 동래는 임진왜란 당시 최대의 격전지 중의 하나였으므로, 이와 관련된 한시나 문헌들이 많이 남아 있다. 「동래 노파」 역시 임진왜란 때 납치되었던 천한 신분의 여성을 조명함으로써, 동래 사람들의 효성을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