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0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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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致遠漢詩碑 |
영어의미역 | Monument of Chinese Poem for Choi Chiwon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유적/비 |
지역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1동 710 동백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임주탁 |
[정의]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 1동 동백섬에 있는 최치원의 한시비.
[개설]
동백섬은 신라 후기 최치원(崔致遠)이 해인사로 은거하기 전에 머물렀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동백섬 남쪽 바닷가의 바위에는 지금도 한자로 ‘해운대(海雲臺)’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최치원이 직접 새긴 것으로 추정한다. 이에 근거하여 동백섬에는 최치원 유적지가 공원으로 조성되었고, 여러 차례에 걸쳐 기념사업이 추진되었다. 1971년 ‘고운 최치원 선생 동상’이 건립될 때 동상의 가림막돌에 최치원의 약전(略傳)[사람의 사적을 간략히 적어서 뒷세상에 전하는 기록]과 한시 9편이 함께 새겨졌다. 최치원 한시비(崔致遠 漢詩碑)는 한시를 새긴 동상 가림막돌을 두고 이르는 것이다.
[건립 경위]
동백섬의 최치원 유적지를 보존하는 사업은 ‘고운최치원선생해운대유적보존회’가 주체가 되어 ‘유학의 대문호인 동시에 천재 시인’을 기린다는 취지에서 세 차례에 걸쳐 추진되었다. 1961~1965년에는 유적비건립위원회[위원장 최두고]가 발기되어 유적비를 건립하였고, 1969~1971년에는 동상건립위원회[위원장 최두고]가 발기되어 동상을 건립하였으며, 1983~1984년에는 해운정건립위원회[위원장 최두고]가 발기되어 해운정을 건립하였다.
최치원의 한시가 새겨진 빗돌이 세워진 것은 두 번째 사업이 추진될 때였다. 동상만으로는 천재 시인으로서의 면모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최치원의 생애를 간단하게 기록한 약전과 함께 9편의 한시를 동상 가림막돌에 새겨 넣었다. 9편의 한시 가운데 첫 번째 한시는 「춘효(春曉)」인데, 이 시의 앞에 새긴 ‘머리말’[이은상 지음]에도 최치원을 “우리나라 한문학(漢文學)의 원조요, 신라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높은 시인”이라고 평가함으로써 한시를 비석에 새기는 취지를 밝히고 있다.
[위치]
최치원 한시비는 해운대 동백섬의 맨 꼭대기에 조성된 고운 최치원 유적지 공원의 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북쪽으로는 조선 비치 호텔, 서쪽으로는 APEC 정상회의가 열린 누리마루가 있으며, 동쪽으로는 해운대 백사장을 끼고 바다가 펼쳐져 있다. 남쪽으로는 해운정과 ‘해운대’석각이 있고 그 너머로 오륙도가 보이는 바다가 펼쳐져 있다. 주소지는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 1동 710번지이다.
[형태]
최치원의 한시는 ‘고운 최치원 선생 동상’의 후면 좌우로 병풍처럼 세워진 10개의 가림막돌 가운데 오른쪽 5개의 돌에 새겨져 있다. 왼쪽 5개의 돌에는 이은상이 지은 약전이 새겨져 있다. 한시는 원문과 이은상이 번역한 시를 함께 새겼다. 글씨는 모두 서예가 김충현이 썼다. 약전과 한시, 한시 번역은 모두 오석에 새겼는데 10개의 오석 가운데 중앙 쪽 2개는 높이 120㎝, 너비 85㎝이며, 나머지 8개는 높이 120㎝, 너비 63㎝이다. 10개의 오석은 높이 233~270㎝, 너비 120㎝, 두께 61~73㎝의 화강암 기둥의 상단부에 부조한 것처럼 박아 넣었다.
[금석문]
최치원의 한시는 이은상 시인의 우리말 번역과 함께 오석의 전면에 세로로 새겨져 있다. 이렇게 새겨진 최치원의 한시는 「춘효」, 「추야우중(秋夜雨中)」, 「우흥(寓興)」, 「우정야우(郵亭夜雨)」, 「촉규화(蜀葵花)」, 「가야산 홍류동(伽倻山紅流洞)」, 「양산 임경대(梁山臨鏡臺)」, 「증독거승(贈獨居僧)」, 「증산승(贈山僧)」 등 모두 9편이다. 「춘효」 앞에는 이은상 시인이 쓴 ‘머리말’을 붙여 한시를 새기는 취지를 밝혀 놓았다. 모든 시는 이은상의 번역문을 먼저 새기고 원문을 뒤에 새겼다. 그중 「추야우중」, 「우흥」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비 오는 가을밤에[秋夜雨中]」
추풍유고음(秋風唯苦吟)[쓸쓸한 가을바람 애닮은 노래]
세로소지음(世路少知音)[세상엔 날 알아주는 이 없고]
창외삼경우(窓外三更雨)[깊은 밤 창밖에는 비 듣는 소리]
등전만리심(燈前萬里心)[등불 아랜 만 리 먼 길 외로운 마음]
「생각을 붙여[寓興]」
원언경이문(願言扃利門)[너 부디 이익 길엔 생각을 끊고]
부사손유체(不使損遺體)[부모 주신 귀한 몸 상치 말아]
쟁내탐리자(爭奈貪利者)[어쩌다 진주를 캐는 저 사람]
경생입해저(輕生入海底)[목숨 걸고 바다 밑을 들어가는고]
신영진이염(身榮塵易染)[몸은 영화 티끌에 더럽기 쉽고]
심구비난세(心垢非難洗)[마음 때는 물로도 씻기 어렵네]
담박여수론(澹泊與誰論)[누구랑 담담한 맛 의논하리요]
세로기감례(世路嗜甘醴)[세상 사람들은 달고 취함 즐기는 것을]
[현황]
고운 최치원 선생 동상은 고운 최치원 유적지 공원에 자리하고 있어 공원을 찾는 사람이면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다. 동백섬이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46호로 지정되어 있는데다, 동상에 인접하여 최치원유적지보존회 관리 시설이 들어서 있어 공원의 각종 시설물은 항상 깨끗하게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동상 기단부의 출입은 제한하고 있어 후면에 새겨진 한시는 읽어 보기가 쉽지 않다.
[의의와 평가]
최치원은 한국 한문학의 조종(祖宗)[시조가 되는 조상]으로 평가되는 인물이다. 그의 유적지에 세워진 한시 비도 그에 대한 평가에 의해 가치를 부여받게 마련이다. 그에 더하여 최치원은 부산의 세계적인 명소인 해운대의 지명이 있게 하였다는 점에서 일찍이 부산을 역사적 공간으로 만든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한시 비보다 먼저 최치원의 유적지를 발굴하고 보존하는 사업이 추진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최치원 한시비는 최치원이 어떤 인물이고, 어떤 시를 지은 인물인지를 알아가는 데도 도움이 된다. 그뿐 아니라 「우흥」은 지금 남아 있는 한국 문학 가운데 부산 바다를 소재로 지은 최초의 문학 작품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문학 공간으로서의 부산의 의미를 음미하는 데도 도움이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