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88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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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義城- |
영어의미역 | Uiseong Village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동 의성 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표용수 |
[정의]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동에 있었던 자연 마을.
[명칭 유래]
신라 시대 때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이곳에 성을 쌓고 군사를 배치하였는데, 법흥왕 때 왜적이 쳐들어와 성주 황룡(黃龍) 장군과 군사 500여 명이 죽기를 각오하고 맞서 싸우다 전멸하였다. 이에 조정에서 나라를 위해 의로운 죽음을 택한 이들의 넋을 추모하는 뜻으로 이 성터를 의성(義城)으로 명명하였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의성 부근에 있어 의성 마을이라 불렀다.
[형성 및 변천]
의성 마을은 신라 시대 의성이 있었다고 전하는 것으로 보아 마을의 오랜 역사를 짐작할 수 있다. 1906년 양산군 좌이면 산양리[주성리]에서 동래군 좌이면으로 개편되었다가 1910년 부산부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동래군 구포면 덕천리가 되었다. 1943년 구포면이 구포읍으로 승격하였다. 1963년 부산직할시에 편입되면서 부산진구 구포출장소 덕천동이 되었다. 1975년 부산직할시 직할 북부출장소에 편입되었다. 1978년 북부출장소가 북구로 승격되었다. 1983년 10월 덕천동이 덕천 1동, 덕천 2동으로 분동되었고, 1992년 9월 덕천 1동이 덕천 1동, 덕천 3동으로 분동되었다. 1995년 부산직할시가 부산광역시로 승격하면서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동 의성 마을이 되었다.
[자연 환경]
의성 마을 동쪽으로 상학산 줄기가 이어진 70m의 구릉성 산지인 의성산이 있고, 서쪽은 낙동강과 접한 강변 마을이다. 의성산의 남서쪽 입구에 자리 잡은 구룡사에 용암 샘터가 있었는데, 샘터 위쪽에 깊은 굴이 뚫려 있다. 옛날 이곳에 살던 용(龍)이 승천하면서 산 정상을 뚫고 솟아올라 샘터가 동굴처럼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1974년 구룡사 앞으로 남해 고속 도로가 낙동 대교로 연결되면서 의성 큰 산과 아래쪽 작은 산이 절단되어 샘터 물이 줄어들기 시작하였고, 인근의 수백 년 된 당산 나무도 차츰 생기를 잃어 완전히 고사하고 말았다고 한다.
[현황]
의성 마을은 현재의 의성산을 서쪽으로 끼고 남북으로 길게 위치해 있었는데, 의성산의 북동쪽 사면을 끼고 있는 성훈 강변 아파트[부산광역시 북구 금곡대로 97] 부근을 안 의성, 그 아래 강변 쪽 경부선 철도가 지나는 곳을 바깥 의성으로 불렀다. 마을의 남쪽은 기찰 마을과 접한다. 현재는 도시화가 진행되며 바깥 의성 지역은 금곡로 개설과 남해 고속 도로 입체 교차로가 조성되어 있고, 안 의성 지역은 주택지와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어 옛 마을의 흔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의성산에는 임진왜란 때 왜군이 쌓았던 성인 구포 왜성[부산광역시 기념물 제6호]이 남아 있고, 인근에 북구 문화 빙상 센터, 구룡사, 수월암 등이 있다. 마을을 가로질러 금곡로와 경부선 철도가 지나가며, 금곡로 아래로는 도시 철도 2호선이 지나간다. 의성산을 가로질러 남해 고속 도로 진입로인 낙동 대교가 연결되어 있다. 숙등 교차로에서 화명동 경계까지의 도로를 의성로로 명명하여 옛 마을 이름의 명맥을 이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