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85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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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月內- |
영어의미역 | Wolnae Village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월내리 월내 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맹인섭 |
[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월내리에 있는 자연 마을.
[명칭 유래]
월내(月內)의 옛 이름은 월래(月來)였다. 명칭의 유래는 여러 가지이다. 먼저, ‘월(月)’은 경주의 옛 이름인 월성과 같이 울타리 또는 성(城)을 의미하며, ‘래(來)’는 서라벌의 라(羅)와 마찬가지로 마을 또는 촌락을 의미하여 성책(城柵)을 가진 마을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본다.
다음으로는 마을 북동쪽 월내천 옆에 이름 없는 큰 못이 풀숲에 덮여 있었는데, 밤에 달이 뜨면 마치 호수에서 달이 솟아오르는 듯하여 달[月]이 큰 못[湖] 안에서 뜨는 마을이라 하여 월호(月湖)라 하다가 1866년(고종 3) 달이 동리(洞里) 안에서 뜬다고 하여 월내라 하였다고 한다. 월래의 ‘래(來)’가 ‘내(內)’로 바뀐 것은 기록상 확인되지 않으나 ‘ㄹ’이 ‘ㄴ’으로 발음되며 나타난 변화로 추정한다.
[형성 및 변천]
월래 마을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경상남도 기장군 가호안(慶尙南道機張郡家戶案)』[1904]의 “기장군 중북면 월내동에 김씨 16호, 박씨 8호, 이씨 7호, 장씨 4호, 배씨 3호, 서씨 3호, 전씨 3호, 정씨 3호, 조씨 3호, 한씨 3호로 67호가 거주한다”이지만, 『기장현읍지』[1899]의 산천조에 “월내포(月來浦)가 현의 동쪽 25리[약 9.82㎞]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명칭을 확인할 수 있다.
월내 마을이 속한 월내리는 1895년 5월 26일 을미개혁으로 기장군 중북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 3월 1일 지방 제도 개편으로 동래군 장안면 월내리, 1973년 7월 1일 동래군의 폐군으로 양산군 장안면 월내리, 1985년 10월 1일 양산군 장안읍 월내리가 되었다가, 1995년 3월 1일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월내리 월내 마을이 되었다.
[자연 환경]
월내 마을은 북으로는 삼각산(三角山), 서로는 달음산, 동으로는 아이봉대산(阿彌烽台山)에 둘러싸여 있으며, 남으로는 동해안과 접해 있는 해안가 마을이다. 동해안의 남단[N 35°가량]에 위치하여, 겨울은 따뜻하고 여름은 시원한 기후를 보이며, 남쪽의 해안은 월내 해수욕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마을의 북쪽으로 장안천[월내천이라고도 함]이 관통해 흘러 남쪽 해안으로 유입되는데, 이 하천은 마리내 또는 건천(乾川)으로 불리다가 1914년 3월 장안면이 형성되면서 장안천으로 개칭되었다. 상류에서 장안읍 반룡리까지는 머리내[宗川·頭川]로, 그 하류는 달울내[月來川]로 불렸다고도 한다. 장안천을 가로지르는 월내교[울내] 인근[월내 어린이 놀이터 부근]에는 75그루가량의 소나무 군락지가 숲을 이루고 있다.
[현황]
월내 마을은 월내리의 중심 마을이었는데, 현재와 같이 큰 규모는 아니었다. 마을이 성장하며 없어진 택구방우 마을·팔칸 마을의 권역까지 포함하게 되어 현재의 마을이 되었다. 택구방우 마을은 인근에 태끼[토끼]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탁구방 마을이라고도 불렀다 한다. 택구방우 마을은 형성 시기와 소멸 시기가 확인되지 않고 마을 터는 현재 농경지로 이용되고 있다.
팔칸 마을은 광복 후 일본에서 귀국한 이들에게 정부에서 지어 준 팔칸 집이 있어 붙여진 이름인데, 월내의 남쪽인 임랑과 경계 지점에 있어 그 구역이 명확하지 않았다고 한다. 팔칸 마을도 소멸 시기가 확인되지 않으며, 현재는 묘관음선원이 자리 잡고 있어 흔적을 확인할 수 없다.
월내 마을 남쪽 해안에는 월내 해수욕장이 있고, 장안천에는 월내교와 월천교가 건설되어 있다. 마을에는 마을 회관, 어린이 놀이터, 무료 급식소, 동해 남부선 월내역[기장군 장안읍 월내리 142번지], 월내 시장[2·7일 오일장], 봉화사, 법성사, 월내교회, 기장문화예절학교[월내리 579번지]가 있다. 월내리 할배 당산은 월내역에서 동북쪽 10m 지점에 있으며, 매년 음력 정월 14일 밤에 제를 지낸다. 마을의 주업은 어업과 농업 및 큰 도로변의 상업이 주를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