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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8250
영어의미역 Osige Village
이칭/별칭 오현리(鳥峴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부산광역시 금정구 부곡로42번길 14[부곡동 796-7] 오시게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송진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자연 마을
가구수 449가구
인구(남, 여) 1,953명[남 940명|여 1,013명]
변천 시기/일시 1914년 - 동래군 북면 부곡리
변천 시기/일시 1936년 - 부산부 부곡동
변천 시기/일시 1957년 - 부산시 동래구 부곡동
변천 시기/일시 1982년 - 오시게장 구서동으로 이전
변천 시기/일시 1988년 1월 1일 - 동래구에서 분구되어 금정구의 관할이 됨
변천 시기/일시 1995년 - 부산직할시 금정구 부곡동 오시게 마을에서 부산광역시 금정구 부곡동 오시게 마을로 개편
자연 마을 오시게 마을 - 부산광역시 금정구 부곡로 42번길 14[부곡동 5통] 오시게 마을

[정의]

부산광역시 금정구 부곡동에 있는 자연 마을.

[명칭 유래]

부곡동에서 서동으로 가는 고개에 숲이 우거지고 까마귀가 매우 많아 이를 까막 고개 또는 오시게[오현(鳥峴)]라고 불렀는데, 그 주변에 있는 마을이어서 오시게 마을이라 이름 붙였다고 전한다. 일설에는 ‘오시’가 ‘작다’라는 뜻의 ‘앗[아시]’, ‘아차’에서 나온 것으로 ‘작은 고개’라는 뜻일 수도 있다고 본다.

[형성 및 변천]

오시게 마을은 일제 강점기 이 지역에서 청동기의 유물이 발견되었고, 500년 전 박씨가 처음 들어와 마을을 이루었다고도 하여 오랜 거주 역사를 추정할 수 있으나 명확히 확인된 바는 없다. 전해지는 역사는 일제 강점기부터이다. 일제 강점기 오시게 마을은 공동 우물[동현중학교 산기슭 일대에 위치] 가에 있던 주거 지역이었다. 일본인 두 사람이 경영하는 포도, 복숭아, 배, 사과 과수원[현재의 내성고등학교 일대]이었으며, 과수원 북쪽에는 공동묘지가 있다. 일본인의 식수 해결을 위해 물을 취수하던 상수도 정수장이 부곡 4동의 주민센터 자리에 있었다.

1950년대에 오시게 마을에는 16가구가 거주하였는데, 6·25 전쟁 당시 마을에 있던 기와 공장이 피난민 수용소로 이용되었다. 1955년 이후에는 준공업 지역이 되며 인근에 한진기계와 브라더미싱, 주물 공장, 철공소 등이 설립되었다. 장전동 소정 마을 소정껄(금정초등학교 옆 도로지역)에서 1970년대 초에 온천장역[도시철도역] 앞 부곡 4동 393-19번지 일대에 옮겨와서 오시게장[2일, 7일장]이라 하였다. 김해와 양산 등지에서 오는 100여 명의 상인과 인근의 영세 상인들이 모여들어 무·배추 등의 채소류와 토산품 등의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나, 1982년 구서동으로 이전하였다가 다시 노포동 부산종합버스터미널 앞으로 옮겨가서 오시게장[2일, 7일장]의 전통을 잇고 있으며, 지금은 노포장으로 부르고 있다.

부곡동 오시게장은 당시의 지명만이 남아있을 뿐, 현재는 정사각형 2층 연립 건물과 도로변 점포로 현대화되어 있다.

오시게 마을이 있는 부곡동은 1914년 동래군 북면 부곡리로 개칭되었다가 1936년 부산부 부곡동, 1957년 부산시 동래구 부곡동이 되었다. 1988년 1월 1일 동래구에서 분구되어 금정구의 관할이 되었다. 1995년 부산직할시가 부산광역시로 승격되면서 부산광역시 금정구 부곡동 오시게 마을이 되어 현재에 이른다.

[자연 환경]

북동쪽에 윤산[317m]이 있고, 남서쪽으로는 마안산[134m]이 있어 두 산지 사이 골짜기에 자리하였다.

[현황]

오시게 마을의 인구는 2012년 현재 449가구에 총 1,953명으로 남자가 940명, 여자가 1,013명이다. 마을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주택과 아파트, 상가가 밀집한 거주지로 변모하였다. 주변에 부곡 4동 주민센터, 금정 국민 체육 센터내성고등학교, 동현중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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