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82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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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五倫臺- |
영어의미역 | Oryundae Village |
이칭/별칭 | 오륜대리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금정구 오륜대로 263[부곡동 1통] 오륜 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송진모 |
[정의]
부산광역시 금정구 부곡동에 있는 자연 마을.
[명칭 유래]
오륜대(五倫臺) 마을은 오륜대에서 따온 지명이다. 오륜대의 지명 유래는 기록상에서도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 먼저 『동래부지(東萊府誌)』[1740] 고적 조에서는 “오륜대는 동래부의 동쪽 20리의 사천(絲川)이 있었는데, 대에서 4~5보가량으로 시내[溪]에 임하고 암석이 기이하여 구경할 만하다. 속전에(俗傳)에 이르기를 사람이 대 주위에 사는데 오륜을 다 갖춘 까닭에 이같이 이름 지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다음으로 『동래군지』[1937]에는 “오선감여가(五仙堪輿家)가 말하기를 오륜이라는 것은 모양은 월륜(月輪)과 같아 내[川]에 잠겨 있는데 무릇 다섯 군데에 있다. 이 대는 그 가운데에 있으므로 오륜리라고 하였다.”고 기록하였다. 또한 『동래부읍지(東萊府邑誌)』[1832]에서는 “오륜대는 동래부의 북쪽 15리에 있는데, 내의 바위가 기이하다. 옛날 다섯 명의 노인이 지팡이를 꽂고 풍경을 돌아보았다 하여 오로리(五老里) 마을로 부르기도 하였다”라고 씌어 있다.
[형성 및 변천]
오륜대 마을은 북동쪽 구릉에서 청동기의 유적[돌도끼 2점과 고려·조선 시대 건물 초석으로 추정되는 돌무더기, 청자·백자 편이 흩어져 있으며, 마을의 동남쪽 구릉에서는 민무늬 토기 편, 돌도끼, 방추차 등이 발굴]이 발굴된 것으로 미루어 수영강의 강변이 청동기 시대부터 주거지로 이용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지만, 기록상에서 확인되는 시기는 늦다.
『동래부지』에 오륜대리가 처음 나타나는데 “관문에서 20리의 거리에 있었으며, 동래부 동면에 속해 있다.”고 되어 있다. 『경상남도 동래군 가호안』[1904]에는 “오륜동에 정씨(鄭氏) 4호, 김씨(金氏) 11호, 송씨(宋氏) 2호, 이씨(李氏) 3호, 박씨(朴氏) 5호, 문씨(文氏) 4호, 강씨(姜氏) 1호 등 30호가 살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이 가운데 김씨는 1500년경 이 마을의 입향조로 알려져 있다.
1914년 동래군 북면 부곡리로 개칭하였다가 1936년 부산부 부곡동으로 개칭되었다. 1942년 부산부에 편입하며 동래출장소에 속하였으며, 1957년 부산시 동래구 부곡동으로 개칭되었다. 1988년 1월 1일 동래구에서 분구되어 금정구의 관할이 되었다. 1995년 부산직할시가 부산광역시로 승격되면서 부산광역시 금정구 부곡동 오륜대 마을이 되어 현재에 이른다.
[자연 환경]
오륜대 수원지의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북쪽으로는 해발 150m가량의 작은 산이 있고, 남쪽으로는 해발 70m의 통미골이 있다. 마을은 두 산지 사이에 위치한다.
[현황]
오륜대 마을의 면적은 6.79㎢이다. 이 중 5㎢가 산림 지역으로 오륜대 수원지와 오륜 정수장이 위치하여 개발 제한 및 수원 보호 구역으로 설정되어 있어 자연 마을의 형태가 많이 남아 있다. 1980년경 40여 호가 살았으며, 1991년 2월에는 208가구에 남자 397명, 여자가 395명이었다. 2012년 4월 현재 인구는 144가구에 총 342명으로 남자가 161명, 여자가 181명이다. 마을 서쪽으로 남북으로 뻗은 도시 고속 도로가 지나고 있다. 주요 기관으로 오륜정보산업학교, 오륜대 한국 순교자 박물관, 순교자 묘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