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8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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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紛切- |
영어의미역 | Bunjeol Village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부산광역시 강서구 미음동 미음 지구 산업 단지 내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황규성 |
[정의]
부산광역시 강서구 미음동에 있던 자연 마을.
[명칭 유래]
분절 마을의 명칭은 옥녀봉과 관련된다. 옥녀봉에는 풍수적 형세와 관련된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옥녀가 머리를 풀고 앉아 비단 병풍[금병산]을 치고 마을 앞 우물에 얼굴을 비추며 마을 건너 빗골[미음 마을 쪽 즐골]의 빗으로 머리를 빗는다는 것이다. 분절은 옥녀(玉女)가 머리를 빗질한다는 의미로 처음 한자로 표기할 때 가루 분(粉)에 빗 즐(櫛) 자를 써 ‘분즐(粉櫛)’로 썼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분즐(粉櫛)이 분절(粉切)로 바뀌었다고 전한다.
[형성 및 변천]
분절 마을 동북쪽 구릉지 쪽에 신석기 시대 조개 패총지와 분절 고분군이 있고, 일제 강점기 때 판 분절 저수지에서 5세기 유물이 출토되어 오랜 거주 역사를 알게 한다. 마을의 형성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이 마을은 함안 조씨(咸安趙氏)와 창녕 조씨(昌寧曺氏) 집성촌으로 1875년(고종 12) 태어난 독립운동가 조정환(曺正煥)의 생가 터가 있어 조선 시대에도 있었던 마을임을 알게 한다. 마을이 속한 지역은 조선후기 김해군 토야면이었으며, 1832년(순조 32) 김해군 태야면으로 개칭되었다.
1914년 태야면이 녹산면에 병합되며 경상남도 김해군 녹산면 미음리 분절 마을이 되었고, 1989년 부산직할시 강서구 미음동이 되었다가, 1995년 부산직할시가 부산광역시로 승격되면서 부산광역시 강서구 미음동 분절 마을이 되었다. 2008년 ‘미음 지구 산업 단지’가 조성되면서 마을 전체가 철거되어 사라졌다.
[자연 환경]
마을의 북서쪽 옥녀봉을 중심으로 산줄기가 북쪽과 서쪽으로 뻗어 있고, 남동쪽에는 평지가 펼쳐져 있었다. 서쪽에는 장유와 연결된 태정고개가 있으며, 마을의 동남쪽 산자락에 분절 저수지가 있다.
[현황]
분절 마을은 2008년 미음 지구 산업 단지 조성 사업으로 마을 전체가 철거되며 지석묘 유적과 패총까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옥녀봉 남동쪽 기슭의 남강재(南岡齋)와 그 주변 일대만이 남아 공단 내 ‘남강재 공원’으로 조성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