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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6901
한자 日照
영어음역 Iljo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부산광역시 중구 대영로226번길 15[영주동 582-2]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하지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도서
간행자 동래 감리서
권책 6책
규격 28.3×18.5㎝
간행 시기/일시 1893~1902년연표보기 - 간행
소장처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599
간행처 동래 감리서 -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 582-2 일대

[정의]

1893년부터 1902년까지 재부산 일본영사관에서 동래 감리서로 보낸 공문을 필사하여 엮은 책.

[개설]

『일조』는 1893년(고종 30) 7월부터 1902년(고종 39) 12월까지의 개항기에 재부산 일본영사관에서 동래 감리서[현재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 582-2번지 일대]로 보내온 조회(照會) 등의 공문을 모아 동래 감리서에서 간행한 책자이다.

[저자]

동래 감리서는 개항장의 외교·통상 업무와 재외 거류민 관계 업무를 관장할 목적으로 부산 지역에 설치된 관청이다. 초기에는 동래 부사가 감리를 겸임하면서 기존의 행정 체계 안에서 업무를 처리하다가 1890년 독립된 관서로 설치되었다.

[편찬/간행 경위]

현재 『일조』의 원본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으며,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각사등록(各司謄錄)』49에도 영인되어 수록되어 있다.

[형태/서지]

필사본 6책이며, 크기는 28.3×18.5㎝이나 일정하지 않다. 공문의 각 건마다 문서 번호가 있으며, 일본어로 기록되어 있으나 대부분 역 한문(譯漢文)이 첨부되어 있다.

[구성/내용]

『일조』는 총 6책으로 되어 있다. 제1책은 1899년 6월~8월, 제2책은 1899년 5월~6월, 제3책은 1893년 7월~10월, 제4책은 1899년 3월~5월, 제5책은 1902년 1월~5월, 제6책은 1902년 10월~12월까지의 문서를 모아 엮었다. 재부산 일본영사관에서 동래 감리서로 보낸 조회와 조복(照覆) 등이 실려 있는데, 많은 양의 문서가 누락된 것으로 보인다.

주요 내용으로는 조선 상인을 대상으로 한 일본 상인의 부채 상환 요구와 관련된 내용이 가장 많다. 이 외에 관원의 임용과 해임, 수세, 조선인과 일본인 간의 분쟁 사건, 객주 조직 관련, 양미(糧米)의 수출 금지, 일본군의 연습 등 경상남도와 전라남도 일대에서 일어났던 조선과 일본 양국 간의 여러 문제에 관한 내용들이 수록되어 있다. 특히 조선 상인과 일본 상인 사이에서 발생한 부채 문제는 대개 양국 상인 간의 곡물 거래 과정에서 기인한 것이다. 여기에는 영사관에서 소장을 접수하면서 기록한 ‘양민 교섭 채안(兩民交涉債案)’과 일본 상인의 소장인 ‘조회원(照會願)’, 채권·채무 관계를 증명하기 위해 제출된 차용증 격인 표(標), 매매·양도 문서인 명문(明文) 등이 첨부되어 있어 당시 조선 상인과 일본 상인 간의 곡물 거래 방식의 일면을 사실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일조』는 시기상 1889년 8월~12월까지 동래 감리서와 일본영사관이 주고받은 공문을 엮어 간행한 『일안(日案)』제3책에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일조』는 개항기 부산을 비롯한 경상남도 일대에서 일어났던 조선과 일본 간의 여러 분쟁 사건뿐만 아니라 부산항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던 일본 상인들의 사회 경제적 움직임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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