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67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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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미역 | Helmet |
이칭/별칭 | 주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물품·도구/물품·도구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이현주 2 |
[정의]
부산 지역에서 출토되는 삼국 시대 투구.
[개설]
투구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전사(戰士)의 머리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용 장비로, 삼국 시대에는 주로 철제로 된 것이 주류를 이룬다. 특히 삼국 시대의 투구는 종장 판혁 철주(縱長板革綴冑), 충각부주(衝角附冑), 차양주(遮陽冑), 소찰주(小札冑), 이형주(異形冑)가 있다. 종장 판혁 철주·소찰주·이형주는 우리나라 삼국 시대의 전형적인 투구라고 할 수 있으나, 충각부주와 차양주는 갑옷과의 동반 관계, 기원과 변화 과정, 제작에 따른 설계사상 등으로 고려해 볼 때 일본 고분 시대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차양주의 경우에는 형성 과정에 한반도의 갑주(甲胄)[갑옷과 투구] 문화가 영향을 끼친 점은 있으나, 자체적인 발전 과정을 통해 일본 내에서 정착한 형태이다. 부산 지역에서는 출토한 투구의 대부분이 종장 판혁 철주이며, 충각부주가 부산 오륜대 고분에서 채집되었고, 연산동 고분군 출토품으로 전해지는 차양주가 일본 국립 동경박물관에 소장 중이다.
[연원 및 변천]
종장 판혁 철주는 고구려에서 기본적인 제작 전통을 찾을 수 있으며, 한반도 남부 지역의 토착적인 유기질제 투구 제작 기술과 결합하여 4세기 초 철제 종장 판혁 철주로 나타나게 된다. 투구의 형태는 세로로 긴 지판 12~50매를 가죽 끈으로 엮어 투구의 몸통을 만들고, 양옆에는 볼 가리개를, 목 뒤에는 뒷목 가리개[首尾部]를 매달은 것이다. 이 투구는 입면(立面)에서 보았을 때 형태가 매우 독특해 몽고발형주(蒙古鉢形冑), 종장판주(縱長板冑), 수신 판혁 철주(竪矧板革綴冑) 등으로도 불리고 있다.
또한 투구의 몸체를 구성하는 지판의 단면에 따라 S자로 만곡하여 휘어진 것은 만곡 종장 판혁 철주(彎曲縱長板革綴冑), 내만하기만 하는 것은 종장 판혁 철주로 구분된다. 삼국 시대 후기로 갈수록 지판 폭이 좁고 수량이 많아져 투구 제작에 공정이 많이 들어갔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러한 투구 형태가 삼국 시대에 가장 많으며, 통일 신라~고려 시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의 가장 보편적인 형식의 투구이다.
충각부주는 앞이마에서 정수리까지 날카롭게 돌출되어 평면에서 보면 살구 열매 모양을 이룬다. 투구 몸체는 삼각형·종장방형·횡장방형 철판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철판들끼리 가죽으로 엮거나 못으로 고정하였다. 투구의 양옆과 뒷목에 걸쳐 가로로 긴 철판 여러 매를 상하로 드리워 귀와 뒷목을 방호하였다. 정수리에는 세 갈래 촉을 달아 술을 달았다. 고령 지산동 고분군 32호, 함양 상백리 호생원 1호, 부산 오륜대 고분 채집품, 김해 죽곡리 94호에서 출토되었다.
차양주는 오늘날 야구 모자처럼 챙이 있는 것으로 기본적으로 좁은 종장판을 못으로 고정하였으며, 정수리 부분에 복발과 수발, 그리고 두 가지를 연결하는 관이 있다. 고령 지산동 1-3호, 김해 두곡 43호 출토품이 있다.
[형태]
종장 판혁 철주 가운데 한반도에서 가장 이른 자료는 부산 복천동 고분군 89호 출토품으로 4세기 초에 해당한다. 이후 4세기대 만곡 종장판주가 8점[부산 복천동 고분군 38호, 42호 2점, 46호, 56호, 64호, 86호 2점]에 이르며, 종장판주는 6점[부산 복천동 고분군 44호 2점, 54호, 69호 2점, 86호]이 출토되었다. 5세기대에는 만곡 종장판주만 16점에 이르는데, 부산 복천동 고분군[10·11호 2점, 21·22호, 34호, 39호, 47호 2점, 78호, 93호, 112호, 학소대 1-3호 2점] 외에도 연산동 고분군 2점, 부산 오륜대 고분 1점 등이 있다. 종장 판혁 철주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투구의 몸체를 구성하는 철판의 양이 많아지고 폭은 좁아지며, 만곡도가 심해지는 경향으로 나아간다.
부산 지역에서 출토된 충각부주는 부산 오륜대 고분 채집품이 유일하다. 출토 상태가 불완전하기는 하나, 투구의 몸체는 삼각형 철판을 가죽으로 엮은 삼각판혁철(三角板革綴) 기법의 충각부주로 보이며, 정수리 부분을 장식하는 삼미철(三尾鐵)과 주걱 모양의 복판(覆板)이 있고, 뒷목을 가리는 철 편이 다수 출토되었다.
차양주는 연산동 고분군 출토품이라고 전해지는 하나의 사례가 있다. 모두 28매의 철제 지판을 사용하였으며, 종장판 정결 기법으로 제작하였고 정수리 부분 복발은 남아 있지 않았다. 또한 복판 상부에는 8개의 못 장식과 사각 정결간주(四脚釘結幹柱)[관의 끝을 오려 4개의 다리를 만들고 못으로 고정한 것]가 있으며 , 챙은 구화연(九花緣)[9개의 연속 꽃잎 모양]을 가지고, 챙 내부를 삼각형으로 뚫어 장식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