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65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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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淨土眞宗本願寺派本願寺釜山別院-西本願寺- |
영어의미역 | Jōdo Shinshū Bonwonsa-pa Bonwonsa Temple Busanbyeolwon[Sepbonwonsa Temple] |
분야 | 종교/불교,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중구 남포동 3가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정미숙 |
[정의]
개항기 부산광역시 중구 남포동3가에 있었던 일본불교정토종 소속 사찰.
[설립 목적]
개항과 함께 일본 정부는 거류민과 조선인을 대상으로 일본 불교를 포교하기 위해 개항장을 중심으로 사찰을 세웠다. 이에 앞서 1894년(고종 31)[명치(明治) 27년] 11월에 본파 본원사(本派本願寺)로부터 일등순교사(一等巡敎師) 대주철연(大洲鐵然)을 한국에 파견하였다. 그들은 고종(高宗)[1852~1919]을 알현하고 불교와 관련하여 상신(上申)한 적이 있다. 그 후 한국 주요 도시 및 항만 연안의 마을을 시찰하고 귀국하여 포교자 파견을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1898년(고종 35)[명치 31년] 8월에 처음으로 포교사를 파견하고 부산항 남빈(南濱) 3번지[현 부산광역시 중구 남포동 3가]에 포교장을 설립하였다.
[변천]
정토진종(淨土眞宗) 본원사(本願寺)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시대에 동서로 분리되어 두 개의 본원사로 나뉘었다. 1873년(고종 10)에 동본원사(東本願寺)는 대곡파(大谷派)라 불리고, 서본원사(西本願寺)는 본원사파(本願寺派)[본파(本派)]로 불리게 되었다. 정토진종 본원사파 본원사 부산별원[서본원사]은 1898년 8월에 중산유연(中山唯然) 및 반정량영(盤井亮英)이 한국으로 건너와 부산항 남빈에 임시 포교소로 세운 것이다. 1902년(고종 39) 6월 부평정에 별원 건설지를 정하였으며, 1904년(고종 41)에 본산(本山)의 연지초서원(連枝超誓院)이 위문한 후 신도가 증가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정토진종 본원사파 본원사 부산별원[서본원사]은 1905년(고종 42)에 부인회를 조직하고, 그해 9월에 별원 건물을 지었으며, 청년회를 조직하였다. 1908년(순종 2) 12월에는 본산으로부터 독립하였다. 1927년 9월에 부속 육화유치원(六華幼稚園)을 설립하였다. 1935년 당시 조선인과 일본인을 합해 7천여 호의 신자가 있어 상당히 큰 규모였다. 오로지 신도들의 기부금 등으로 운영비를 충당하고 있었는데, 부속 사업으로서 부인회[회원 540명], 동심회(同心會)[회원 175명], 청년교회(靑年敎會)[회원 220명], 소년교회(少年敎會)[회원 650명] 등을 조직하였다. 주임 승려는 용말법동사(龍末法憧師)였다.
[의의와 평가]
정토진종 본원사파 본원사 부산별원[서본원사]은 개항기 일본 불교의 조선 침투 상황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