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64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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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長安下根-公主-王陵 |
영어의미역 | Royal Tomb Produced by Nine Princesses in Jangan Hageun Village |
이칭/별칭 | 「아홉 공주가 쌓은 왕릉」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기룡리 |
집필자 | 조정효 |
[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기룡리에서 아홉 공주가 쌓았다는 왕릉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장안 하근 마을의 아홉 공주가 쌓은 왕릉」은 나라를 잃은 아홉 공주가 장안읍 하근 마을로 피난을 와서 살다가 어머니[왕비]가 돌아가시자 매년 봄에 치마폭에 흙을 담아 봉분을 쌓아서 왕릉의 모습을 갖추게 하였다는 효행담이자 왕릉 조성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2001년 기장군지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기장군지』에 「아홉 공주가 쌓은 왕릉」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정확한 채록 시기와 채록 장소는 분명하지 않다.
[내용]
장안읍 기룡리 하근 마을 기룡천 건너편의 송림 속에 ‘아홉 공주릉’이라는 왕릉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의 울주군 웅촌면 검단리에 우시산국(于尸山國)이라는 작은 왕국이 있었는데, 신라에 정복되어 왕과 왕자는 포로가 되고, 왕비는 아홉 공주를 데리고 장안읍 하근 마을로 와 산속에 숨어 살았다. 이들은 신분을 숨기고 평민으로 가장하여 품팔이를 하며 겨우 연명하면서 포로가 되어 끌려간 왕과 왕족들의 생사를 알고 싶어 날마다 화철령 고개 너머 북쪽을 살피면서 기다렸다.
어느 날 왕비가 병으로 숨을 거두자 아홉 공주는 어머니의 시신을 마당에 묻었다. 그리고 제각기 이웃 마을에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되었는데, 해마다 철쭉꽃이 필 무렵 달 밝은 보름날이면 그 마당에서 만났다. 아홉 공주는 왕비였던 어머니의 무덤을 왕릉답게 만들려고 매년 치마폭에 흙을 담아 와서 봉분을 쌓고 제사를 지냈다. 해마다 흙을 덧쌓은 봉분은 세월이 갈수록 큰 봉분이 되어 왕릉의 모습을 갖추었다. 이후 아홉 공주가 모이던 날[음력 3월 15일]이면 아홉 공주가 살던 아홉 마을의 부녀자들도 이곳 무덤에 모여 아홉 공주의 행실을 기리며 축제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장안 하근 마을의 아홉 공주가 쌓은 왕릉」의 주요 모티프는 ‘아홉 공주의 효로 조성한 왕릉’으로, 나라를 잃은 아홉 공주가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어머니인 왕비를 모시고 살며 효행을 다했다는 이야기이다. 우시산국이 신라에 정복되어 신라군들에게 쫓기면서 걸식을 하고 넝마를 입고 고된 노동에 시달려 어머니가 죽게 되자 뿔뿔이 흩어졌던 공주들이 어머니의 봉분을 만들기 위해 매년 모여 봉분을 쌓았다는 것이 아름다운 전통이 되었다고 한다. 오랜 시간 동안 부녀자들에게 이러한 전통이 이어져 왔다는 편집자의 평(評)과 같이 「장안 하근 마을의 아홉 공주가 쌓은 왕릉」을 통하여 효를 중시하고 덕을 널리 행하고자 하는 이 지역의 미풍양속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