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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6431
한자 藏骨器
영어의미역 Container of Bones Used after Cremation
이칭/별칭 골호,뼈 단지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
집필자 홍보식

[정의]

부산 지역에서 출토된 통일 신라 시대의 화장한 유골을 담는 용기.

[개설]

장골기(藏骨器)는 화장을 한 후 나온 유골을 담는 용기를 지칭하는데, 골호(骨壺) 또는 뼈 단지라고도 한다. 화장 후 남은 유해를 용기에 담아 부도나 땅에 묻는 행위는 시대와 지역·민족 등에 따라 다양하며, 매장 습속 또는 종교적 매장법 등에 의해서도 이루어졌다. 특히 불교식 장법인 화장을 한 후 남은 유해를 용기에 담아 지하에 묻는 화장 묘는 그 대표적 예이다.

불교가 유행한 인도·중국·한국·일본의 고대와 중세의 매장 방식의 하나였다. 그뿐만 아니라 특정 종교와 관계없이 토지의 부족과 오염, 장식의 간소화 등의 명분에 의해 최근에는 화장 후 뼈를 용기에 담아 매장하는 장식이 유행하고 있다. 불교식 장법인 화장에 의해 장골기에 유골을 담아 지하에 매장하는 행위는 삼국 시대부터 통일 신라·고려·조선 시대까지 행해져 왔고, 통일 신라 시대에 가장 유행하였다.

[내용]

부산 지역에는 많지 않지만 통일 신라 시대의 화장 묘가 여러 곳에서 확인되었고, 장골기도 출토되었다. 연산동 고분군[부산광역시 기념물 제2호, 연제구 연산동 산 90-4]의 화장 묘 장골기는 유개병(有蓋甁)[뚜껑 있는 병]이다. 뚜껑은 정선된 태토의 도질 소성 제품으로 소성 정도가 양호하다. 뚜껑 외면에는 전면에 녹색 자연유가 부착되어 있고, 내면은 밝은 회색을 띤다. 개산의 외면에는 상단 4개, 하단 5개의 이중 원문이 2단으로 찍혀 있다.

유골을 담은 병은 도질 소성 제품이나 소성 정도가 양호하지 못하여 와질 소성에 가깝다. 전체적으로 암회색을 띠며 구연부(口緣部)[아가리]는 완전히 결실되었다. 목 부분과의 경계 지점과 몸체에서 가장 둥근 부위에 가로로 일렬의 점원문을 돌리고 그 내부에 종 2열의 점원문으로 9칸을 구획한 후 C자문 1개, 역C자문 7개, 9자문 1개를 배치하였다.

목 부분에는 2열의 점원문을 X자형으로 배치하였다. 구연부의 내면에도 점원을 찍었는데 파손이 심해 뚜렷한 문양의 특성을 알 수가 없다. 장골기로 사용된 뚜껑과 병은 8세기 중엽에 걸쳐 출토되는 기형으로 8세기 중엽 이후 연산동 고분군에 화장 묘가 조영되었음을 나타낸다. 기장군 기장읍 대라리 유적과 장안읍 명례리 통일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화장 묘의 장골기도 유개합(有蓋盒)이다. 뚜껑 외면에는 지그재그 점렬문이 시문되었고, 합은 문양이 없다. 이 유개합은 일상생활의 식기로 사용하던 것을 화장묘의 장골기로 전용하였다.

[특징]

지금까지 부산 지역에서 확인된 화장 묘의 장골기는 유개병과 유개합 등 종류가 단순하고, 장식이 화려하지 않으며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통일 신라 토기의 특징을 잘 나타낸다. 일상의 식기로 사용된 유개합을 화장 묘의 장골기로 전용한 것은 통일 신라 시대 지방에 만들어진 화장 묘의 장골기와 동일하다. 통일 신라의 수도인 왕경과 일부 지방의 장골기는 유골을 담은 내용기와 내용기를 담은 외용기로 된 이중 구조인 예도 있고, 지방의 장골기는 일상생활에 사용한 토기가 많이 사용되는 등 장골기의 재질과 구조에 당시 왕경과 지방, 신분에 따른 차이가 있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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