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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벽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6429
한자 自由-壁
영어의미역 Wall of Freedom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지명/시설
지역 부산광역시 금정구 산성로 872[장전동 산30]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오재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옹벽
조성 시기/일시 1984년 5월 17일연표보기 - 조성
최초 설립지 자유의 벽 - 부산광역시 금정구 장전동 산30
현 소재지 자유의 벽 - 부산광역시 금정구 장전동 산30지도보기

[정의]

1980년대 중반 자유 게시판으로 이용된 부산대학교 제2도서관 앞 사회대학 옹벽.

[개설]

1980년대 관제 언론 이외에 부산대학교 내 언로가 충분치 않았던 시절에 정보와 소통의 확대를 바라는 학내 여론을 기반으로 대자보가 나붙기 시작하였다. 장소는 교내에서 학생들의 출입이 가장 많은 제2도서관과 학생 식당인 금정 회관 사이였다. 이곳에는 경사가 심한 지형에 도서관과 사회대학 건물을 인접하여 축조한 탓에 조성된 높이 5미터가 넘는 옹벽이 있었다. 이 옹벽은 크기나 위치가 대자보를 붙이기에 적당한 데다, 앞과 좌우의 세 방향이 모두 트여있어 멀리서도 게시물을 볼 수 있어서 대자보를 붙이기에 안성맞춤인 장소였다. 이에 학내외 여러 사안에 대한 의견을 피력한 대자보를 붙여 정보와 소통의 장으로 활용하였다.

특히 학내외 민주화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된 1984년 무렵에 대자보는 단연 학내 구성원의 관심의 초점이 되었다. 이에 대해 학교 측은 대자보 철거와 주동자 색출이라는 고식적인 방식으로 일관하였는데, 이 때문에 저녁이면 학생들이 대자보를 붙이고 다음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학교 측에서 대자보를 걷어 내는 진풍경이 일상적으로 반복되었다.

[건립 경위]

1984년 5월 11일 발족하여 학내 민주화 투쟁을 주도한 효원민주화추진위원회[약칭 효민추]는 게시판 설치를 위하여 학교 측과 교섭하였으나 실패하자, 5월 17일에 제2도서관과 체육관[현재 굿플러스 자리] 앞에 ‘효원 자유의 소리’라는 벽면 게시판을 직접 설치하였다. 게시판을 설치하면서 효원민주화추진위원회는 “지금까지 은폐되어 온 5·18 민주화 운동의 진실을 밝히고 알 권리, 알릴 권리를 위해 설치한다.”며 그 정당성을 천명하고, 이곳을 자유로운 게시판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자유의 벽’ 만들기 운동을 전개하였다. 효원민주화추진위원회는 이를 통해 학내 문제 및 제반 사회 문제들에 관한 진실을 학생들에게 알리고자 하였으며, 이후 이곳은 학내 자유 언론의 상징으로 ‘자유의 벽’이라고 명명되었다. 한참 동안의 실랑이 끝에 결국 학교 측도 현실을 인정하게 되면서, 이후 자유의 벽에는 다양한 학내 구성원의 게시물이 폭주하였다.

[변천]

자유의 벽은 원래 장소인 사회관 남쪽 옹벽에서 90도 각도 옆인 서쪽 옹벽의 인도 앞으로 이전하여, 나무로 된 게시판을 설치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체육관 앞의 게시판은 이후 그다지 사용되지 않았고, 제2도서관 앞의 게시판이 오랫동안 사용되면서 ‘자유의 벽’으로 인식되었다.

[현황]

2012년 현재 자유의 벽은 생활 정보 게시판으로 성격이 변경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자유의 벽부산대학교 내의 자유 언론의 상징이자 소통을 실현하는 공간이었다. 또한 1980년대 중반 부산대학교의 학내 민주화 투쟁의 과정에서 학생들의 공감과 참여를 이끌어 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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