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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원민주화추진위원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6855
한자 曉原民主化推進委員會
영어의미역 Hyowon Commission of Democracy Promotion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금정구 부산대학로63번길 2[장전동 산30]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오재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학생 자치 기구
설립 시기/일시 1984년 5월 11일연표보기 - 설립
최초 설립지 부산대학교 - 부산광역시 금정구 장전동 산30지도보기

[정의]

부산광역시 금정구 장전동에 있었던 학생 자치 단체.

[설립 목적]

효원민주화추진위원회는 학내외의 민주화 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변천]

1983년 12월 정부는 해직 교수 복직, 제적생 복교 허용, 학내 상주 경찰 철수 등 이른바 ‘학원 자율화 조치’를 발표하였다. 부산대학교 34명의 복교 대상자들은 대책 위원회를 구성하고 무조건 복교를 주장하며 학교 측과 대립하였다. 이때 공동체연구회, 동마령, 배움공동체, 성아회, 아카데미, 한소리패 등 서클은 학내 자율화 추진위원회와 서클 연합회를 결성할 것, 학내 언론의 자유를 보장할 것, 제적생의 전면 복교 등을 주장하고, 3월 26일 서클 연합회를 발족하였다. 학원 자율화의 열기가 높아지는 가운데 3월 28일 총학도호국단의 주최로 열린 ‘효원인 대화의 광장’에서는 1,000여 명의 학생이 참석하여 총학도호국단 직선제, 복교생 문제, 학회 연합회 결성, 서클 연합회 결성, 학내 언론 자유, 지도 교수제 폐지, 평교수 협의회 부활 등의 문제들에 대한 의견을 모아 결의문을 발표하였다.

4월 7일 아카데미, 성아회, 배움공동체, 사회학, 정치학, 역사연구회의 주최로 효원 민주화 관련 심포지엄이 개최되어 효원 민주화를 위한 조직체에 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이에 효원 민주화의 방향과 추진 조직체를 두고 학도 호국단, 서클, 학회, 일반 학생 간의 논의가 진행되었지만 학도 호국단과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4월 11일 서클 연합회와 학회를 중심으로 독자적인 효원민주화추진준비위원회의 준비 모임이 시작되었다.

이런 와중에 ‘학도 호국단 명맥 방법’이라는 유인물이 발견되면서 서클 연합회 소속 100여 명의 학생들이 총학도호국단 사무실을 점거하고, 총학도호국단의 총사퇴, 학교 측의 해명, 효원민주화추진준비위원회의 인정을 요구하며 4월 26~28일까지 철야 농성을 하였다. 하지만 이후에도 학교 측, 총학도호국단과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다. 이에 효원민주화추진준비위원회는 5월 10일 운동장 스탠드에서 준비 공청회를 가지고, 11일 분과 위원을 선출하여 효원민주화추진위원회[약칭 효민추]를 발족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효원민주화추진위원회는 “대학인의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대학이 처한 비민주적 비자율적 상황을 연구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여, 사회의 비민주적 상황을 널리 밝히고 폭로하며 그 대안을 제시한다”는 기본 입장을 밝혔다. 이를 위해 인권·교육 학술·언론 홍보·복지 문화·전문 분과 위원회 등의 분과 위원회 활동을 통해 대학의 자율화를 진전시키고자 하였다.

그리고 각 서클 및 학회 활동을 후원하여 학내 자율 활동을 활성화시키고 이를 저해하는 비민주적 학칙 및 규정을 철폐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주 1회 정기적인 ‘민주 논단’을 운영하여 민주적 의지를 결집하였으며, 기관지를 발행하고, 구속 학생을 위한 집회 및 서명 운동을 전개하고, 각종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하기도 하였다. 특히 ‘효원 자유의 소리’를 설치하여 학생들의 알권리와 말할 권리를 회복하고자 하였으며, 5월 18일 부산에서는 최초로 5·18 민주화 운동 추모제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이외에도 효원민주화추진위원회는 자유의 벽 만들기, 학도 호국단 폐지, 졸업 정원제 폐지, 총학생회 부활 등 1984년 학내 민주화 투쟁을 주도하였다.

[의의와 평가]

효원민주화추진위원회는 1984년 유화 국면을 맞아, 기존의 학내 이념 조직들이 공개적이고 대중적인 활동을 전개한 성과였다. 이로써 서클 중심의 기존 학생 운동의 한계를 극복하고, 단발적인 시위를 통한 선전 활동이 아닌 일상적이고 지속적인 활동의 근거를 마련하고, 보다 조직적인 학생 운동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후 총학생회의 부활, 학생회 직선제 등 학내 민주화를 위한 기반을 조성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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