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64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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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臨濟宗妙心寺派釜山布敎所 |
영어의미역 | Linji school Myosimsapa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서구 토성동 1가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하지영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광역시 서구 토성동1가에 있었던 임제종 소속 사찰.
[설립 목적]
임제종 묘심사파 부산포교소(臨濟宗妙心寺派釜山布敎所)는 개항 이후 한국에 전래된 일본 불교 임제종 묘심사파의 부산 지역 포교소로, 식민지 조선의 일본인 밀집 지역인 부산에서의 교세 확장을 위해 설립되었다.
[변천]
1912년 5월 25일 부산부 부산 보수정 1정목[현재 부산광역시 중구 보수동 1가] 153번호의 한 민가를 빌려서 가포교소를 설치한 것이 그 시초이다. 초대 주지인 곡소윤(谷紹允)이 죽자, 곡소윤의 제자 도엽졸당(稻葉拙堂)이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1913년 12월 24일 신도들에게서 조성한 기금과 본산으로부터의 보조금으로 부민정 2정목[현재 부산광역시 서구 부민동 2가] 10번호에 포교소를 신축하였으며, 1914년 5월 28일에는 대본산 관장이 부산으로 와 입불식(入佛式)을 집행했다. 1936년 토성정 1정목[현재 부산광역시 서구 토성동 1가]으로 이전하였다. 일본 불교는 해방과 동시에 한반도에서 철수하여, 그 사찰 역시 명맥이 끊어졌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포교 활동, 종교 의례가 주된 활동이었다. 연도별·민족별 신도 호수(信徒戶數)를 살펴보면 1923년 일본인 240호, 조선인 14호, 1924년 일본인 265호, 1927년 일본인 221호, 1928년 일본인 228호, 1929년 일본인 223호, 1930년 일본인 218호, 1931~1933년 일본인 381호, 1934년 일본인 446호, 1936년 일본인 472호로 나타난다. 포교소가 존재했던 보수동·부민동·토성동 지역이 주로 일본인이 밀집하였던 곳이므로, 신도 역시 일본인이 압도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일제 강점기 부산 지역에서의 일본 불교 수용 양상을 알 수 있어, 향토사 연구와 불교사 연구에 도움이 된다.